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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 단편소설 부문-장려상] 동창(同窓)

영숙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제 막 영숙을 보내고 탁자를 정리하던 미옥은 서둘러 소파 사이사이에 손을 넣어보았다. 소파 왼쪽 팔걸이 틈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미옥은 틈새로 손을 겨우 밀어 넣어 휴대폰을 잡아 올렸다. 그리고 막 받으려는데 전화가 끊겨버렸다. '아들. 부재중 전화 1통'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서둘러 쫓으면 영숙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영숙은 기분 좋게 미옥과 한잔하겠다고 가게 앞에 차도 두고 오지 않았던가. 버스 정류장까지는 조금 걸어 올라가야 하니 빠른 걸음으로 뛰듯이 쫓아가면 금세 영숙이 보일 것이다. 미옥은 부랴부랴 한 손엔 영숙의 휴대폰을 챙겨 들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낮에는 가을볕이 눈부시게 빛난다 싶었는데 밤이 되자 겨울의 문턱에 선 듯 찬 바람이 오롯이 미옥의 몸을 감아 올랐다. 역시 겉옷을 입고 나올 걸 그랬어. 미옥은 두 팔을 서로 포개어 가슴께를 덮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붉게 타오르는 일본단풍나무 집도 지나고 바람에 살랑이는 미송나무와 히말라야 삼나무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산책로도 지났다. 걸음이 빨라질수록 미옥의 숨소리도 점점 더 가빠지고 있었다. 이제 곧 버스 정류장이 있는 큰길인데 여전히 영숙의 옷자락도 보이질 않다니 미옥은 영숙의 걸음걸이가 이토록 빨랐었나 싶어 놀라고 있었다. "아얏!" 살짝 올라가는 시늉만 하는 언덕길이었는데도 너무 서둘렀는지 미옥은 발목을 접질린 것 같았다. 미옥은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발목을 살폈다. 오래된 슬리퍼가 문제였다. 며칠 전 오른쪽 밑창이 사 분의 일 쯤 떨어져 나가고 있던 것을 손질해 놓지 않았더니 고르지 않은 길에 걸려 넘어지고 만 것이다. 미옥의 발목이 살짝 부어오르는 것이 눈에 보였다. 손가락으로 눌러보니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이렇게 주저앉아 있다가는 영숙을 놓쳐버리겠다 싶어 미옥은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다. 그런데 그때였다. '끼익-- 쾅!!' 아스팔트를 긁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둔탁한 충돌음이 들려왔다. 고무 타이어 타는 냄새가 역하게 진동했다. 큰길가 쪽이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미국 여자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함께 기다리던 동양인 청년은 큰길가 쪽으로 퉁겨지듯 달려나갔다. 미옥의 발목이 욱신거렸다. 속이 뭔가 모를 불안감에 울렁거려 숨이 찼다. 오른쪽 슬리퍼를 자리에 그냥 버려둔 채 절뚝이는 걸음으로 큰길 쪽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사람들이 금세 몰려들었고 누군가는 911에 신고를 하는 것 같았다. 점점 큰길 쪽으로 다가서니 사람들 틈새로 붉은 피가 뿌려진 까만 아스팔트 바닥 위에 나뒹구는 빨간 에나멜 구두 한 짝이 보였다. 미옥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수술 대기실에 앉았다. 전광판에 영숙의 이름이 영어로 떠 있었다. 'Landers Young S' 옆 의자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던 여자아이가 미옥을 이상하게 훑어보았다. 얇은 연갈색 티셔츠에는 화려한 데이지꽃이 색깔별로 화사하게 그려져 있었고 영숙이 준 갈색 냉장고바지는 처연하게 늘어져 있었다. 거기다 삼선 슬리퍼는 왼쪽만 한 짝 걸쳐져 있고 오른쪽 발은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발목까지 벌겋게 부어 있었다. 여자아이가 미옥의 등을 살짝 두 번 두드렸다. 미옥은 얼굴을 감싸고 있던 두 손을 내려 여자아이를 쳐다보았다. "Are you okay? (괜찮아요?)" 미옥은 아이를 향해 씁쓸히 웃으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미옥은 그제야 자신의 손에 쥔 영숙의 휴대폰을 발견했다. 얼마나 꼭 쥐고 있었던지 손바닥이 다 하얗게 되었다. '아! 영숙이 아들.' 미옥은 언젠가 동부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다던 영숙의 아들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 소식을 아들에게 알려야 했다. 그래도 다행히 영숙의 휴대폰은 미옥의 손에 있었고 그 아들에게서 오늘 부재중 전화가 걸려왔었다. 미옥은 통화버튼을 길게 눌렀다. '아들. 통화연결 중...' 통화연결음은 마치 미옥의 숨소리처럼 비슷한 박자로 뛰고 있었다. "헬로우? 엄마?"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굵직한 젊은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남자는 서툴지만 영어 억양이 느껴지는 발음으로 정확히 '엄마'라고 불렀다. 미옥은 한 손으로 마이크 쪽을 감싸 쥐며 천천히 이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숙의 아들은 긴 한숨을 내쉬며 때때로 '예스' '오케이' 정도의 대답을 하였다. 그리고 그는 비행기 표를 구해 최대한 빨리 가겠다며 미옥에게 영숙을 부탁했다. '땡큐' 하며 끊는 남자의 목소리는 다소 격한 슬픔의 감정을 힘겹게 누르고 있는 듯했다. 미옥과 영숙이 처음 만난 것은 두 달 전 한인 마트에서였다. "카드 좀 다시 해 보시겠어요?" 캐쉬어가 좀 피곤하다는 기색을 비치며 미옥에게 말했다. 하지만 카드 기계가 다시 성난 경고음을 내었을 때 미옥은 얼굴에서부터 목까지 벌게지는 것을 느꼈다. "자 잠시만요. 다른 카드로 한번 해 볼게요. 이게 왜 안 될까 모르겠네?" 미옥은 서둘러 지갑을 열어 다른 카드를 찾았다. 하지만 있을 리 없었다. 카드빚을 쌓지 않겠다는 신조로 살았던 남편이 겨우 데빗카드만 하나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눈동자가 시선을 잃고 마구 흔들렸다. 그리고 지갑을 뒤지고 있는 미옥의 손도 눈에 띌 정도로 흔들렸다. 그때 데빗카드가 미옥의 흔들리는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미옥의 자존심도 함께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카드를 주우려는 미옥의 손 앞으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나이든 손이 불쑥 들어왔다. 미옥보다 먼저 카드를 주운 사람은 미옥의 뒤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한 손님이었다. "어머 너 미옥이 아니니?" "네? 누구..." "나야 영숙이! 어머 일단 반가운 건 나중에 하고. 저기요! 제 친구 카드가 지금 뭐가 문제가 좀 있나 본데 제 것과 같이 계산해 주세요." '영숙이? 그런 친구가 있었던가?' 미옥은 재빨리 머릿속 옛 기억들을 뒤져 '영숙' 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면서 영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영숙이 올려놓은 소갈비 한 팩과 애플 망고 한 상자가 미옥의 것들과 함께 계산되었다. "어머 얘 오랜만이다. 어쩜 이리 하나도 안 변했니 너는?" "어? 어... 그래. 영숙이라 그랬나? 미안한데 내가 나이가 드니 기억이 잘 안 나서...우리가 언제 친구였더라?" "초등학교 동창이잖아 우리. 사실... 그럴 만도 하지. 나 얼굴에 손 좀 댔거든." 영숙은 목젖이 다 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미옥과 같은 나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젊어 보였다. 목과 손은 나이를 속일 수 없다지만 얼굴엔 팔자 주름도 없고 이마를 굵게 패는 가로 선도 보이지 않았다. 피부도 어찌나 고운지 부잣집 사모님 태가 났다. 이 낯선 땅에서 이런 돈 많은 친구 하나 어디 없나 생각했던 옛날 자신의 모습이 갑자기 생각나 미옥은 당혹스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어쨌든 오늘 너무 고마워. 내가 나중에 꼭 갚을게." "얘는 무슨 친구 사이에 별소릴 다 한다. 이렇게 오랜 친구를 만난 것도 늙어서 행복인데 말을 꼭 그렇게 섭섭하게 해야겠니? "하지만 그래도..." "됐어 얘! 하여튼 너무 반갑다 친구야." 영숙은 미옥의 손을 꼭 쥐었다. 미옥은 좀 어리둥절했지만 타국에서 만나는 오랜 친구는 처음인지라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그것도 제법 부자인 것 같은 친구이니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집으로 돌아와서 주머니 속에 있는 종이쪽지를 꺼내었다. 영숙이 준 자신의 연락처였다. 미옥은 소파에 기대 누워 쪽지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영숙 영숙? 영숙..." 미옥은 영숙의 이름을 입을 열어 여러 번 불러보았다. 자꾸 부를수록 친근해지는 이름이었다. 정말 친했던 친구 같았다. 어떤 친구였을까? 반을 호령하던 반장? 아니다. 그렇게 유명한 애 같았으면 분명 기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키가 작고 존재감도 없던 조용한 친구? 그것도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미옥도 학창시절 내내 키가 작아 맨 앞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과연 누구일까. 남편이 떠나고 처음이다. 마음이 무언가에 대해 기대감으로 가득 차는 것은. 사별 후 하루하루가 참 의미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미옥의 삶에 또 다른 의미가 생긴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미옥은 좀 전의 일들이 다시 떠올랐다. 데빗카드가 안 된 것은 아마 통장에 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미옥은 삼 개월 전 남편과 사별했다.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떠난 남편은 미옥의 모든 것이었다. 믿을만한 자식도 하나 낳아 놓지 못하고 나이가 들었다. 주위에서는 인공수정도 입양도 권하였지만 남편은 미옥 하나만 있으면 된다 하였다. 미국 이민 올 때도 그러했다. 나만 믿으라 큰소리치던 남편 뒤를 따라 낯선 시애틀 땅에 발을 들였다. 물론 시누님께서 이민 초기에는 많은 도움을 주시기도 하셨지만 지금은 치매로 인해 양로원에 계시다니 조카들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편의 그늘 아래 사는 것이 좋았다. 그 그늘은 안전했고 편안했다. 그렇게 체크 쓰는 것부터 은행 일 운전까지 모든 걸 남편이 홀로 감당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였다. 남편이 떠나고 나니 미옥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차를 팔아 장례를 치렀다. 운전을 못 하니 차는 없어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당장의 생활비를 대었다. 하지만 그간 이것저것 정리할 일들이 많아 은행 잔고 확인을 못 한 것이 화근이었다. 또한 그다지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통장이 바닥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집의 주 수입원은 남편이 벌어오는 월급이 전부였다. 모아둔 돈도 없는 이민 생활에 통장이 바닥나는 것은 오늘 뜬 해가 내일도 다시 뜨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미옥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기댈 언덕도 없는 환갑의 아무 기술도 없고 영어도 잘 못 하는 여자가 어떻게 벌어먹고 살아야 할지....' 그때 좀 전에 만난 영숙이 떠올랐다. 순간 '영숙이 어쩌면 남편이 자신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 나니 영숙이 더 좋아졌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시절 영숙이라는 친구가 있었던 것 같았다. 머리가 길고 참 조용했었던.... 미옥은 다음번에 영숙을 만나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일자리 알선을 좀 부탁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블라인드 사이로 기분 좋게 아름다운 노을이 거실 안으로 들어와 앉았다. 미옥은 오늘이 정말 낭만적이고 행복한 하루였다고 생각하며 눈을 지그시 감아 내렸다. 다음날 미옥은 영숙에게 전화를 하였다. 하루라도 빨리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러니까 미옥이 네 말은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거구나? 어떤 쪽으로 찾고 있는데?" "특별히 뭐 그런 건 없어. 그냥 아무거나." "음… 아! 나 다니는 병원 사무직원 구한다던데 거기 소개해 줄까?" "아 그건 내가 영어를 잘 못 해서… …" "그러면… 아! 네일샵 일을 배워볼래? 자격증 따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던데." "코 앞에 글자도 잘 안 보이는데 그런 게 가당키나 하겠니?" "아 그렇구나. 그럼 뭘 해 보지? 그래. 일단 네가 잘 하는 게 뭔지 이야기해 봐. 잘 하는 게 뭔지를 알아야 그 쪽으로 일을 알아볼 거 아니니." "글쎄… 내가 잘 하는 거라… …" 미옥은 영숙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주제라 영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살면서 무언가 절실히 해 보고 싶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남편의 그늘이 너무 편해서였다. 미옥은 꽤 오랫동안 그렇게 말이 없었다. 남편 생각이 났다. 언제나 자기를 아껴주고 칭찬해 주었던 그였다. "남편이 내 요리 솜씨가 좋다고는 했었지." 한참 후에 미옥이 던진 말이었다. 실로 그랬다. 남편은 외식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입이 까다로웠던 그를 위해 돌아가신 시어머니께서도 특별히 당부하셨던 것이었다. 그렇게 신혼 초기에 시어머니께 배웠던 요리솜씨가 다행히도 남편의 입맛을 사로 잡았다. 남편은 미옥의 요리 솜씨에 항상 엄지 두 개를 치켜세우곤 했다. "남의 식당 밑에서 하는 일은 힘들텐데…" 이번엔 영숙이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생각에 빠졌다. "뭐라고 했니?" "아니 그냥 생각 좀." 영숙의 눈빛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영숙은 미옥의 손을 잡아끌었다. 걸음걸이는 매우 위풍당당하기까지 했다. 여섯 개의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는 제법 규모가 있는 2층 건물이었다. 맨 끝에서부터 테리야키 보험 사무실 그로서리 한식당 네일샵 피자집이 늘어서 있었고 위층은 콘도로 사람들이 입주해 사는 것 같았다. "여기야 미옥아. 마음에 드니?" "뭐가? 뭐가 마음에 든다는 거야?" "어 저기 오시네." 한식당 문 앞에 서서 아리송한 질문을 던진 영숙은 주차장으로 막 들어오는 벤츠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차는 정확히 두 사람 앞에 섰고 웬 4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이는 말끔한 남자 한 명이 내렸다. "아이고 미세스 랜더스. 이게 얼마 만입니까? 자주 찾아 주시지 않아서 섭섭할 뻔했습니다. 하하하." "김 선생은 맨날 나를 만날 때마다 그 타령이야? 내가 찾을 일 있음 꼭 김 선생만 찾는 거 몰라?" "아 요즘은 너무 조용하셔서 동부 아들네로 거처를 옮기셨나 했지요." 넉살좋게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 김 선생이라는 남자는 영숙을 '미세스 랜더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미옥은 그 둘이 오랫동안 거래를 해 온 사이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단 들어가서 보시죠. 얘기해 두었습니다." "그래 그러자고. 미옥아. 들어가자." 영숙은 미옥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워 넣으며 방긋 웃었다. 김 선생은 두 사람보다 앞서가 한식당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 한식당은 미옥도 전에 남편과 몇 번 온 적이 있었지만 맛은 그다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그래도 집안 살림엔 소질이 있던 미옥은 요리는 좀 하였다. 친정엄마가 전라도 분이시라 솜씨가 꽤 좋았었기 때문에 그 입맛을 기억해서 그런지 남편은 언제나 미옥의 요리에 엄지를 두 개나 치켜들곤 했다. "아이고 미세스 랜더스. 이게 얼마 만입니까? 자주 찾아 주시지 않아서 섭섭할 뻔했습니다. 하하하." "김 선생은 맨날 나를 만날 때마다 그 타령이야? 내가 찾을 일 있음 꼭 김 선생만 찾는 거 몰라?" "아 요즘은 너무 조용하셔서 동부 아들네로 거처를 옮기셨나 했지요." 넉살좋게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 김 선생이라는 남자는 영숙을 '미세스 랜더스'라고 불렀다. 그리고 미옥은 그 둘이 오랫동안 거래를 해 온 사이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단 들어가서 보시죠. 얘기해 두었습니다." “그래, 그러자고. 미옥아. 들어가자.” 영숙은 미옥의 팔에 자신의 팔을 끼워 넣으며 방긋 웃었다. 김 선생은 두 사람보다 앞서가 한식당의 문을 열어 주었다. 그 한식당은 미옥도 전에 남편과 몇 번 온 적이 있었지만, 맛은 그다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그래도 집안 살림엔 소질이 있던 미옥은 요리는 좀 하였다. 친정엄마가 전라도 분이시라 솜씨가 꽤 좋았었기 때문에 그 입맛을 기억해서 그런지 남편은 언제나 미옥의 요리에 엄지를 두 개나 치켜들곤 했다. “여기 요새 새 집들 많이 들어서고 있는 거 아시죠? 요 앞에도, 요 뒤에도 거의 완공해서 분양 시작했고요. 길 건너 저 빈 터 보이시죠? 앞에 써 붙인 시공사 팻말도 보이시고! 이 지역에 인구가 계속 불고 있잖습니까? 그래서 요 앞길이 요새 용도가 변경되었어요. 그래서 요즘 짓는 빌딩들은 다 높이 올린다는 거 아닙니까? 저 빈 터에 들어오는 게 아파트인데 무려 6층짜리랍니다. 그래서 이곳 비즈니스들이 요새 죄다 가격이 뛰었어요!!” 김 선생은 입에 침을 튀기며 흥분해서 말했다. 뿐인가. 손을 얼마나 휘둘러대는지 미옥은 현기증이 다 날 지경이었다. “어쨌든, 그건 그렇고. 이 분이 그러니까, 이 가게 새 주인이 될 분이시라는 거죠?” “!!” 김 선생은 미옥을 바라보다가 다시 영숙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미옥의 눈동자가 커졌다. “응. 내 초등학교 동창인데, 요리 솜씨가 참 좋아. 썩히기 아까운 마음에 일단 내가 다운페이할테니 잘 좀 봐 줘. 어쨌든 홀로 사업하는 건 처음이니까, 전 주인에게 일하는 사람들은 그대로 두어 달라고 얘기 좀 해 주고.” 미옥은 둘의 대화에 한 마디도 끼어들 수가 없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기도 했고, 너무 당황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가게가 내 가게가 된다니!’ 미옥은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구분이 되지 않아 탁자 아래로 자신의 허벅지를 조금 꼬집어 보았다. 바늘로 찌른 듯한 통증이 사방으로 번졌다. 꿈은 아니었다. 자기 가게가 된다고 생각하며 둘러보니, 가게가 참으로 아늑하고 좋았다. 크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주메뉴 몇 가지에 주력하면 분명 장사가 잘 될 자리였다. 새 아파트들도 많이 들어서고 있고, 특별히 이곳은 번화가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자리였다. 김 선생을 보내고나서 미옥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영숙의 차를 탔다. 좀 전의 둘의 이야기를 상기하며 미옥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보았다. 김 선생의 말에 의하면, 그 가게는 전 주인의 건강상 이유로 급매로 나온 데다가 영숙이 다운페이를 해 주기로 얘기가 다 되어 있어 돌아오는 주에 매상점검하고, 이르면 다음 달 안에도 클로징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미옥은 마음이 급해졌다. 집에 가서 오늘부터라도 당장 주력메뉴를 만들고, 소스와 밑반찬들을 연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숙아, 정말 고마워.” 미옥은 영숙이 자신의 수호천사가 아닐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 “무슨. 그런 말 마. 친구라는 것이 어려울 때 서로 돕고 그러는 거 아니겠니?” 또다시 영숙의 그 호탕한 웃음소리가 차 안에 울려 퍼졌다. 미옥은 그런 영숙의 웃음소리가 참 시원하고 좋았다. “그런데, 영숙아. 우리가 몇 학년 때 같은 반이었니? 초등학교 동창이라 그랬지?” “응?” 영숙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미옥은 자기가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어려운 자신을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도와주고 있는데, 미옥이 영숙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섭섭해 할만한 일이었다. ‘아차.’ 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1학년 때.” “아! 그래. 1학년 때였다. 그치? 내가 이래. 나이를 머리로만 먹었나. 이렇게 정신이 없어서야. 큰일이다, 큰일.” 미옥은 어색한 공기를 환기시키고자 깔깔 웃으며 영숙의 어깨를 쳤다. 영숙도 그제야 같이 호탕한 웃음을 다시 웃었다. “들어와. 누추하지만.” 미옥은 들어가며 쓸어 담듯 바닥에 늘어진 빨래들을 주워들었다. 미옥의 살림살이는 단출했다. 방 한 칸짜리 아파트. 거실엔 2인용 소파 하나와 나무로 된 티테이블 하나, 그리고 기우뚱하게 서 있는 스탠드가 전부였다. 오래된 아파트 일층 코너 집이라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 쪽엔 거뭇하게 카펫에 흙이 묻어 있었고, 소파 뒤쪽은 비가 많은 이 지역의 문제점을 말해주듯 곰팡이가 무늬를 이루며 벽을 타오르고 있었다. 반쯤 열려있는 방 안으로는 퀸사이즈 침대와 나이트 스탠드 하나가 보였다. 그리고 화장실 하나, 부엌 하나. 부엌살림도 남편과 단둘이 살았기에 4인용 전기밥솥 하나에 월마트에서 이십 불이면 살 수 있는 커피포트, 식기 건조대에 가지런히 씻어 올려놓은 밥그릇, 국그릇이 두 개씩 포개어 있고, 숟가락 두 개에 젓가락 두 쌍만이 수저통에 꽂혀 있었다. “앉아. 커피 줄까?” “응. 그래. 다방 커피로 뜨끈하게 한 잔!” 영숙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소파에 앉았다. 이 집에 남편이 아닌 사람이 오는 것이 얼마 만인가. 미옥은 갑자기 신이 났다. 봉지 커피를 하나 뜯어 커피잔에 담고, 커피포트가 물을 끓이는 동안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불렀다. 가끔 소파 쪽을 쳐다보니, 영숙은 거실에 걸려있는 미옥과 남편의 사진 쪽에 눈길을 두고 있었다. “우리 그 초등학교, 이제는 없어졌대. 알았니?” 미옥은 뜨거운 물을 컵에 따르며 거실에까지 들리도록 조금 크게 말했다. “그래? 왜?” “뭐 다 그런 거지. 요즘은 애들도 많이 안 낳거니와 젊은 사람들이 다 서울이나 대도시로 빠지니 별수 있겠니?” “아, 그렇구나. 아쉽다. 그래도 많은 아이의 꿈과 희망이 담겨 있던 곳이었을 텐데...” 영숙은 매우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게. 자, 여기. 뜨거우니 조심해.” 미옥은 커피잔을 영숙 쪽으로 밀어주었다. 옛날 기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마음 따뜻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없으니 미옥은 옛 추억을 공유하며 살아갈 사람이 없었다. “아카시아 아래 앉아서 친구들과 함께 공기놀이도 하고,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까만 고무줄 사다 고무줄놀이도 하고...” “아카시아? 아, 그 교문 밖에 있던? 고무줄놀이할 때면 남자애들 와서 죄다 끊어놓곤 했잖니.” “선생님의 풍금 소리에 맞추어 노래도 부르고, 청소한다고 열심히 바닥도 기어 다니고...” “그래, 맞아. 우리 선생님 예쁜 처녀 선생님이라 목소리도 참 맑았었는데.” 영숙과 미옥은 주거니 받거니 옛 추억들을 짝 맞추어갔다. 따뜻한 커피가 다 식어갈 때까지의 시간이었다. 미옥도 참 오랜만에 떠올리는 추억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천천히 떠올리니 눈앞에 그림처럼 되살아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소녀 감성이 살아나서일까? 영숙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반짝하고 빛났다. 그때였다. 영숙의 휴대폰이 요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울려댔다. “여보세요? 아, 경자구나. 그런데 경자야.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지금 다른 곳에 나와 있어서… 나중에 내가 집에 가서 다시 전화할게.” 영숙은 무슨 일인지 미옥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전화를 끊어 버렸다. “왜 전화 받아도 되는데. 누구?” “어? 어, 초등… 아니, 친한 교회 집사님. 급한 게 아니라 나중에 집에 가서 전화하면 돼. 걱정하지 마.” “아… 그런데 굉장히 친한 사이인가봐? 집사님이신데 ‘경자’라고 이름도 막 부르고.” “으,응. 워낙 허물없이 편해서 그냥 그렇게 불러. 교회에서는 아니고. 커피 맛있다.” “얘는. 인스턴트 커피 맛이 다 거기서 거기지.” “네가 타 줘서 그런가 봐.” 영숙은 과한 미소를 지으며 뜨거운 커피를 불지도 않고 서둘러 마셔댔다. 그런 영숙을 보는 미옥은 영숙이 평소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미옥은 금반지와 열 돈짜리 금목걸이를 내다 팔았다. 당장 아파트세도 내야 하고, 곧 개점할 가게의 주메뉴와 밑반찬들을 미리 만들어 보며 연구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래도 다행히 요즘 금 시세가 좋아 그것으로 한 달 정도의 생활비가 마련되었다. 금가락지는 엄마에게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금목걸이는 죽은 남편의 것이었다. 다 사연이 있는 물건이라 마음이 편칠 않았지만, 지금 미옥에겐 방법이 없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겠기에 눈물을 머금고, 그것들을 내다 팔았다. 갈낙찜을 만들다 보니 남편이 생각나서 갑자기 울적해졌다. 시어머니께서 남편이 특별히 좋아해서 자주 해 주셨다는 보양식이었다. 특히 일이 힘들고, 날씨가 궂어 기력이 많이 떨어져 있을 때 먹으면 뽀빠이 저리가라 할 정도의 힘이 솟곤 하였다. 미옥은 이 갈낚찜을 주메뉴로 밀기로 결정하였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하늘에게 자기를 돕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밑반찬들도 평소 남편이 즐겨 먹던 것들로 준비해 보았다. 꽈리고추를 넣은 멸치볶음은 남편이 가장 좋아하던 반찬이었다. 그리고 미역줄거리 볶음도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이 좋다고 일주일에 한 두번은 꼭 상에 올렸던 것이었다. 그 외에도 담백한 감자채 볶음과 두부조림도 빼뜨리지 않고 반찬 목록에 챙겨 넣었다. 이것저것 잔뜩 연습 삼아 차려 놓고는 미옥 혼자 식탁에 앉았다. 혼자 먹는 저녁상이 꽤나 거창했다. 그것들을 먹는데, 목구멍에서 울컥하고 뭔가가 솟구쳤다. 남편 생각이 나서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남편 그늘 밑이 좋았다. 하지만,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우겨서라도 인공수정을 해 남편 닮은 아이라도 하나 낳아둘 걸. 미옥은 처음으로 그렇게 후회하였다. 그랬더라면 오늘같이 외롭게 이 맛있는 밥상을 대하지는 않았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옥은 꾸역꾸역 음식들을 밀어 넣었다. 이제는 뭐든 씩씩하게 홀로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가게를 개점하는 날. 미옥은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과 홀을 오가며 음식과 손님을 챙기느라 바빴다. 첫날은 주메뉴인 갈낙찜이 반값이라고 광고를 낸 탓인지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들어 개점 시간부터 폐점 시간까지 앉을 틈도 없이 바빴다. 더불어 영숙도 정신이 없었다. 우아하게 원피스 정장에 아들이 이번 생일에 사 보냈다는 빨간 에나멜 구두를 신고 앞치마를 둘러맨 꼴이라니. 웃음이 나오지만,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정신없이 바빴던 가게 문을 닫고 하루 매상을 세었다. 미옥은 지폐를 한 장, 한 장 꼼꼼히 침 묻혀 넘기며 매우 신이 난 표정이었다. 반값으로 팔았는데도 첫날 매상이 무려 천오백 불이 넘었다. 마음속에 기쁨의 환호성이 외쳐졌다. 이런 식이라면 영숙에게 빌린 돈도 금세 갚고, 부자가 될 것만 같았다. 이제 생활비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이다. “와~우리 미옥이 좋겠다. 맨날 돈 세면서 잠들겠네. 어제 돼지꿈이라도 꿨나?” “꿈꿨지. 아주 좋은 꿈.” “무슨 꿈? 똥 꿈?” “아니, 네 꿈.” 영숙은 웃음을 멈추고 미옥 쪽을 바라보았다. 미옥의 돈을 세던 손도 멈췄다. “영숙아. 내 꿈을 이루어준 것은 바로 너야. 고맙다. 친구야.” 미옥은 조용히 영숙을 끌어안았다. 영숙도 그런 미옥의 등을 따뜻하게 토닥거려 주었다. “축하파티나 하러 갈까? 샴페인이라도 하나 터뜨리자!” 둘은 영숙의 차를 가게 앞에 둔 채,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수술은 밤새 진행되었다. 회복실을 거쳐 영숙이 개인병실로 옮겨진 것은 다음 날 늦은 아침이나 되어서였다. 줄줄이 여러 가지 선을 달은 영숙을 보며 미옥은 다시 얼굴을 감쌌다. 어젯밤 너무 들떠 축하파티를 제안한 것은 미옥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면 영숙은 어쩌면 사고를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옥은 가슴이 미어져 왔다. 마치 자기의 잘못인 것 같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미옥은 그대로 두었다. 영숙의 손을 잡고, 미안하다 몇 번이고 잘못을 빌고 있었다. ‘위잉...위잉...’ 그 적막함을 깬 것은 영숙의 휴대폰이었다. 미옥이 병원 안이라 진동 모드로 바꾸어 둔 것이었다. ‘이은미’ 누구일까? 순간 미옥은 급한 전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재빨리 영숙의 전화를 들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영숙이 휴대폰입니다.” “아, 영숙이 친구인데요, 영숙이가 연락이 없어서요.” “아, 네. 사실은 영숙이가 어젯밤에 사고를 당해서 지금 시애틀의 버지니아 메이슨 병원에 입원 중이에요.” “네?! 우리 영숙이가요?” 이은미라는 영숙의 친구는 떨리는 목소리로 병실 호수를 묻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또다시 십 분 정도가 지났을까? 또 다른 전화가 울렸다. 이번엔 ‘정경자’라는 이름이었다. 그 이름은 예전에 미옥의 아파트에 영숙이 놀러 왔을 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영숙이 당황한 듯 급히 전화를 끊었기에 미옥은 그녀에 대해 조금은 궁금했었다. “네? 영숙이가요? 아이고 우짜노, 우리 영숙이 우짜노.” “실례지만.... 영숙이와는 어떻게 되시나요?” 미옥은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 “아, 네. 지는 영숙이 초등학교 동창인데예.” ‘초등학교 동창?’ 힘없이 내리감았던 눈이 번쩍 떠졌다. 허물없이 친하게 지내는 교회 집사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교회 집사님이면서 초등학교 동창일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경상도 사투리? 그것은 어쩐지 수상했다. 미옥은 강원도에서 초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도 강원도에 사는데 경상도에서 전학 온 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역시 무엇인가 꺼림칙해진 미옥은 다시 그 ‘정경자’라는 영숙의 초등학교 동창에게 물었다. “초등학교가 어디...?” “부산 동래 초등학교인데... 전화 받으시는 분은 누구신데예?” “아...네... 저도...” 미옥은 순간 ‘초등학교 동창’이라 내뱉으려다 멈칫했다. “영숙이 친구입니다.” “아...영숙이 친구시구나. 아무튼 곧 갈게예!” 전화를 끊고, 미옥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침대 맞은편 벽면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눈길이 갔다. 거기에는 필요한 영숙의 인적사항과 담당 의사, 간호사 이름들, 그리고 다양한 처치 시간이 쓰여 있었다. 그런데, 영숙의 이름 옆에 생년월일이 좀 이상했다. ‘Landers, Young S, 9/29/1954’ “1954년?!!” “어머, 너 미옥이 아니니?” 미옥은 그때, 자기 카드를 주워들며 재빠르게 카드 앞면을 훑던 영숙의 눈이 기억났다. 그렇다면 왜! 영숙은 미옥에게 그리도 친절을 베풀었단 말인가! 초등학교 동창도 아니라면! 나이도 세 살이나 많았다. 미옥은 의식 없이 누워있는 영숙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영숙의 표정은 평화로워 보였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영숙의 친구들 전화가 왔다. 하나같이 자동응답기처럼 똑같은 말을 하였다. 자신은 영숙의 초등학교 동창이고, 매일 전화를 해 주던 영숙이 전화를 하지 않아 걱정되어 전화했다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전라도 사투리로, 어떤 사람은 충청도 사투리로 말하였다. “엄마!” “어머니!” 영숙의 아들과 며느리가 서둘러 병실문을 열고 들어왔다. 미옥은 눈물을 성급히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둘은 미옥을 보고 먼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아, 전화해 주신 분입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님과는 어떤 사이신지...” “아, 네... 친구입니다. 초등학교 동창이요.” 미옥은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대답한 후, ‘그냥 친구라고만 할걸.’하고 후회했다. 실제로 영숙은 자기 동창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 네.... 아무튼 감사합니다. 이제는 저희가 있어도 되니 피곤하실 텐데 얼른 들어가 보세요.” “예... ” 미옥은 병실을 나왔다. 아직도 정신이 멍했다. 미옥은 복도를 꺾어 돌아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잊고 있던 오른쪽 발목이 다시 욱신거려왔다. 발목은 밤새 더 크게 부어 있었다. 응급실에 내려가서 간단한 조치라도 받고 가야지 싶었다. 엑스레이를 찍은 의사는 뼈에 실금이 갔다면서 신고 벗을 수 있는 간단한 캐스트를 신겨 주었다. 또한 이렇게 한 달은 하고 있어야 한다며 경고했다. 미옥은 병원 안내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부탁해 택시를 불렀다. 버스노선도 모르니,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택시가 오기까지 로비 소파에 앉아 계속 영숙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님은 형편상 학교를 못 다니셨다 하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동창이라니... 어제 밤새 어머님 곁은 지키신 분도, 한 시간 전에 왔다 가신 분도, 지금 방금 왔다 가신 분도 죄다 초등학교 동창이시라잖요? 정말 이상하지요?” 놀라서 돌아보니, 영숙의 아들 내외가 간단한 먹거리를 사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었다. 미옥이 병실을 나온 후, 영숙의 친구들이 몇 명 더 다녀갔나 보다. 미옥은 아직도 자기 손에 쥐어져 있는 영숙의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영숙의 아들에게 전해주고 온다는 것이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들고나온 것이었다. 그 후로도 몇 개의 부재중 전화가 더 와 있었다. ‘투둑투둑.’ 병원 통유리창에 빗방울들이 사선을 그으며 빠르게 흘러내렸다. 드디어 비내리는 시애틀의 겨울이 시작되려나보다. 미옥은 잠시 통유리 밖을 내다보다가 휴대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아, 네. 혹시 영숙이 초등학교 동창이신가요?” 미옥은 그렇게 휴대폰에 있는 모든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똑같이 물었다. 그들은 모두 영숙을 보러 온다고 했다. ‘영숙아, 친구들이 온대. 그런데 이렇게 비가 와서 어째? 더 세차게 내려 길이 막히기 전에 서둘러야 할 텐데....’ 미옥은 영숙이가 깨면 친구들을 모두 불러 가게에서 첫 번째 동창회를 번듯하게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주황색 택시 하나가 빗줄기 속을 달려 들어와 병원 문 앞에 섰다. -끝- --------------------------------------------------------------------------------- [수상소감] 첫 도전에 상까지 받아… 고등학교 때가 생각납니다. 글 잘 쓰는 친구가 재미삼아 쓰던 소설이 친구들에게 인기를 끌자 '나도 한 번 써 보자!' 해서 썼던 어쭙잖은 SF소설로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던 때가 있었습니다. 작년부터 다시 글을 쓰고 배우며 오랫동안 하지 못한 숙제같은 소설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첫 도전에 상까지 받게 되니 등 떠밀려 무대에 올라온 무명가수처럼 어안이벙벙하지만 이로써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아 큰 격려가 됩니다. 걸음마하는 저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언제나 듬뿍 사랑해 주시며 이끌어 주신 선생님들과 가족들 그리고 무엇보다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심사평] 동창을 가장한 이웃의 선행을 그린 미스터리한 작품이다. 마켓에서 잔고가 부족한 줄 모르고 데빗 카드를 냈던 미옥은 결제를 할 수 없어 매우 당황해한다. 이때 뒷줄에 있던 영숙이 대금을 치러주면서 자신은 미옥의 동창이라한다. 그러나 미옥의 기억에는 영숙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어서 영숙은 미옥에게 식당을 차려주는등 경제적 도움을 준다. 이런 미스터리 스토리를 작가는 영숙의 교통사고를 통해 따뜻하게 처리한다. 영숙은 미옥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행을 베푼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수호천사는 있다 라는 이야기다. 문장이 세련되었다. 좀 더 자연스러운 당위성을 위한 장치가 아쉽다. 장려상의 이유다. 심사위원-이언호·명계웅

2018-03-29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 단편소설 부문-가작] 모천(母川)

생각은 보는 것과 듣는 것의 영향을 받고 행동은 생각의 지배를 받는다 무엇을 보고 듣는가가 그래서 중요하건만 나는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고 어긋난 길을 거침없이 달려왔다. 어려서부터 작고 왜소했던 나는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로 똘똘 뭉쳐 있었다. 누군가의 말과 행동으로 인해 쉽게 상처 받고 쉽게 무너지곤 했다. 그날 슈퍼 앞 평상에서 수다 떨던 동네 아줌마들이 내 등 뒤에 툭 던진 말들이 화근이었다. "쟈는 워쩌자고 저리 자라덜 않는겨." "글씨 말여. 조막만 혀가지고 어데 사람 구실 지대로 허것남." "어미젖 못 먹고 자라 그러제. 지 어미젖만 묵었어도 조로콤 작든 않았을 겨." "왜 아녀 그 때 참으로 욕봤제..."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젖을 못 먹었다고? 왜? 그럼 내가 자라지 못한 게 엄마 때문이라는 거네? 어쩐지... 엄마한테 난 늘 뒷전이었어. 엄마한테 난 하찮고 귀찮은 존재였던 거야...' 땅꼬마라며 손가락질하던 친구들 그들과 다툼하고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던 일 작고 왜소한 외모로 인해 힘들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겪은 일들이 엄마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엄마가 미워 견딜 수 없었다. 엄마 탓을 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덧 나도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고 보니 더더욱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산모이기에 아기에게 젖을 물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꾸역꾸역 미역국을 먹고 손목이 시큰거리도록 젖무덤을 문질러대고 있질 않은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싶은 게 산모의 본성일 터. 엄마는 왜 그랬을까. 첫 손주 유나가 태어났다. 막 태어난 아기를 안을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요 설렘이다. 꼬물거리는 손과 발 미간을 찡그리다 빙그레 웃는 입술 배와 가슴을 들먹이며 색색 쉬는 숨소리 응애응애 우는 소리... 양수에 불어 주름진 얼굴조차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없다. 유나에게서 인영이 보인다. 그래서 유나를 더 놓을 수 없다. 인영은 내게 꿈이요 희망이었다. 엄마 아빠 없이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내게 처음으로 생긴 피붙이의 의미는 특별했다. 그날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인영도 덜 외로웠을 텐데... 그 아이가 왜 내게 그리 냉담한지 알 수 없다. 언제부터인가 쇠붙이에 부딪혀 튕겨나가는 돌멩이처럼 자꾸 튕겨져 나갔다. 동네 아이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몸이 더 허약하고 자라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 쓰였다. 그렇다고 일일이 챙겨줄 수도 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를 키워내려면 뭐라도 해야 했으니까. 긴장이 풀렸는지 인영이 깊은 잠에 빠져있다. 저리 고운 얼굴에서 어찌 그런 쇠심줄 같은 고집이 나오는 걸까. 이제 화해할 때도 되었건만 도대체 곁을 주지 않는다. 저도 자식을 낳았으니 언젠간 나를 이해하겠지. 품에서 잠든 아가 볼에 입을 맞추고 인영의 이마에도 슬그머니 입술을 갖다 댄다. 한국에서 근무할 때 그녀를 처음 만났다. 초록서점. 그녀는 서점 계산대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주 조그맣고 귀염성이 있었다. 내가 머리를 숙이면 그녀의 오뚝한 콧날과 긴 속눈썹이 보였다. 그녀는 말을 할 때마다 머리를 뒤로 젖히며 나를 올려다보았고 그녀가 머리를 젖힐 때마다 긴 머리에서 향긋한 냄새가 피어올라 코를 자극했다. 기분 좋은 냄새에 끌려 초록서점에 자주 갔고 그녀의 냄새에 탐닉하게 되었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 날은 행운의 날이었다. 그런 날이면 돌아가는 길에 여자 액세서리를 하나씩 샀다. 긴 머리에 꽂을 꽃 머리핀 가는 목에 어울릴 하트 목걸이 멋스런 링 이어링도 사고 엔젤 브로치도 샀다. 보석함에 행운의 증표가 하나 둘 쌓여갔다. 액세서리가 보석함에 가득 찬 날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그녀를 만난 이후 사년 만에 결혼하고 미국에 들어왔다. 미국에 온 이후 한 번도 자기 엄마를 초대한 적이 없는데 웬일로 엄마를 초대했다. 장모님은 미국에 와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하더니 유나가 나온 후로는 줄곧 아기만 안고 있다. 혜자는 죽은 아내의 간병인이었다. 혜자는 자기도 아기 날 때 어려움이 있었다며 아내에게 정성을 다했다. 막내가 태어나고 폐부종으로 호흡곤란을 겪던 아내는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아이들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혜자에게 도움을 구했다. 혜자는 아이 엄마 장례 치를 때까지만 도와주겠다고 했다. 혜자는 갓 태어난 유석을 보면 얼굴이 하회탈처럼 변했고 우유 먹일 때는 자기 자식같이 애정을 쏟았다. 유석은 뽀얗게 커갔고 유석을 끊지 못한 혜자는 우리 집에 귀한 존재가 되었다. 혜자가 백일 떡 케이크와 수수팥떡을 준비하고 과일과 한과를 수북이 쌓아올리고 실타래와 아기 앨범까지 준비해서 유석 백일 상을 차렸다. 아이들은 풍선과 꽃과 곰 인형을 준비해서 동생 백일을 축하했다. 혜자 딸 인영도 함께 했다. 흥겨운 날이었다. 잔칫상을 정리하고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인영이 소파 뒤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날 혜자는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밤을 보냈다. 같은 지붕 아래 혜자가 있다 생각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잠을 설치고 이른 새벽 주방으로 향하는데 거실에 혜자가 앉아 있었다. 심장이 고동쳤다. 인기척을 들었는지 혜자가 돌아보았다. "어제 고마웠어요. 덕분에 우리 유석이 백일상도 다 받고..." "엄마가 있었음 더 잘해줬을 텐데요." "훌륭한 백일 상이었소. 혜자 씨가 엄마 노릇을 톡톡히 해줬어요." "그런 말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물론 알아요. 유석일 얼마나 예뻐하는지.... 그래서 더 고맙소." "부끄럽네요." 잠시 말이 끊겼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못하고 인사치레만 하는 내가 답답했다. "이만 들어갈게요. 그럼..." "저 혜자 씨!"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우리 유석이 엄마가 되어주지 않겠소?" "네?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 우리 유석이의 진짜 엄마가 되어달라는 거요. 오랫동안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다 어렵게 드리는 말씀이외다. 그간 혜자 씨를 지켜봤어요. 의도적으로 지켜본 건 아니고 그냥 봐지더라는 말이 맞겠네요. 혜자 씨를 보면서 수도 없이 생각했소. 당신이 아이들의 엄마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 말이오." "보모가 되어달란 말인가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니오. 내 아내가 되어주면 좋겠다는 말인데... 내가 이렇게 밖에 말을 할 줄 몰라 미안하오. 언제부턴가 당신을 보면 마음이 훈훈해졌어요. 당신이 집에 있다 생각하면 설레기도 하고 마음이 부푼 풍선이 되었소 당신이 떠난 집은 삭풍 부는 벌판으로 변했고..." 심장이 터질듯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손을 만지작거리며 당황스러워했다. "이 밤에 확실히 알았소. 당신과 함께 있는 게 내게 어떤 의미인지... 부디 곁에 함께 있어줘요. 당신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소." "너무 갑작스러워서 뭐라 드릴 말씀이..." "지금 당장 말하지 않아도 되오. 당신 딸은 내가 자식같이 잘 키우리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결정해주면 좋겠소." 그날 이후 혜자가 인영을 데리고 집에 들어오기까지 석 달의 시간이 더 걸렸다. 엄마는 늘 바빴다. 엄마가 일 하러 갈 때면 나는 누군가에게 맡겨졌다. 엄마가 더 바빠졌다. 새 아빠와 새로운 형제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새 아빠 집으로 들어간 후엔 엄마가 밖으로 나가진 않았지만 맏이인 나는 역시 관심 받지 못했다. 엄마가 새 아빠와 어린 동생들에게 살갑게 굴수록 비위짱이 뒤틀렸다. 나는 늘 혼자였고 엄마와 새 아빠와 배다른 형제들은 모두 같은 편이었다. 동생들은 낮에는 나를 졸졸 따라 다니며 귀찮게 하다가도 저녁에 새 아빠가 들어오면 일제히 새 아빠에게 들러붙어 재잘대곤 했다. 그럴 때면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가 처음이요 마지막으로 학교 문 밖에서 기다리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날 아빠는 백화점에서 핑크색 원피스 블루진 바지 체크무늬 붉은 재킷 빨간 모자 핑크빛 나이키 운동화를 사줬고 뷔페식당에서 저녁 먹은 후 나를 데리고 남산에 갔다. 하얀 벚꽃이 눈처럼 흩날렸다. 예전엔 거인 같았던 아빠가 그날은 작고 왜소해 보였다. 왠지 측은한 느낌이 들어 많이 웃었다. 내가 웃으면 아빠도 웃고 아빠가 웃으면 내가 웃었다. 아빠와 손 흔들며 걷기도 했고 양 손 마주잡고 빙글빙글 돌기도 했다. 흩뿌리는 하얀 꽃잎 사이로 남산타워가 보였다. 남산타워에 올라가니 눈앞에 불빛들의 광휘가 펼쳐졌다. 한강 대교와 도로의 자동차 라이트 행렬 빌딩마다 품어져 나오는 휘황찬란한 불빛들 가히 서울은 불야성의 도시였다. 아빠가 나를 사진에 담았다. 다음날 아빠는 병원에 갔다. 엄마는 얼마나 술을 퍼마셨으면 간이 작살났느냐며 통곡을 했고 아빠는 망연하게 천정만 쳐다보았다. 병원에 입원한 아빠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아빠라는 존재가 내 기억 속에서 일부는 사라지고 일부는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을 무렵 새 아빠가 내 앞에 나타났다. 아빠. 이 말은 내겐 그리움의 단어였다. 만질 수도 가질 수도 없고 불러도 대답 없는 공허의 단어요 혼자 허공에 되뇌곤 하던 단어였다. 이제 매일 그 단어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 유석이 새 엄마가 된 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다. 아빠 잃은 인영이 자기 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우는 걸 알았을 때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졌다. 그 슬픔을 본 후 어떻게든 아빠의 몫까지 더해 인영만은 잘 키우리라 마음을 도슬러 먹었다. 유석 아빠의 프러포즈 받고 가장 먼저 인영을 생각했다. 그의 제안은 나쁘지 않았다. 형제 여섯이 일순간 생기고 아빠도 생기는 일이었다. 내가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것들을 해결해 줄 좋은 기회였다.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아이 여섯 키우는 일에 선뜻 나설 이유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선택이다. 처음엔 완강히 자기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형제들과도 어울리지 못하던 인영이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방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인영이 웃는 횟수가 늘어났고 말수도 차차로 많아졌다. 인영이 시집가는 날 내 선택이 옳았음을 실감했다. 그들이 인영과 더불어 즐거워하며 친밀하게 지내는 모습은 내게 큰 기쁨이다. 인영이 나를 초청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결혼할 때조차도 나대신 새 아빠나 형제들에게 기대어 결혼 준비를 했던 터였다. 인영의 출산 과정과 첫 손주 유나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꿈만 같다. 유나를 안고 있으면 막 낳아서 안아주지 못했던 인영이 자꾸 생각난다. 첫 아기가 세상에 나오려 한다. 예정일보다 일주일 먼저 나온 탓에 갑자기 분주해졌다. 이슬이 비쳤다. 몸 안에 둥지 틀고 자라던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한다 생각하니 감동이 밀려왔다. 정성스레 목욕한 후 병원을 찾았다. 진통은 밤새 계속되었다. 허공에 노란별이 번쩍였다. 시공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자궁이 뒤틀렸다. 아기가 나오기 전의 긴장감은 분화구를 뚫고 화산이 폭발하려는 순간의 긴장감 폭풍전야의 고요 속에 응집된 긴장감과 다를 바 없었다. 마지막 힘을 다하는 아이와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내 에너지가 조탁작용을 하고 있었다. 한 생명이 탄생하려는 찰나의 숭고함이었다. 몇 겹 지방과 자궁벽에 막힌 작은 우주 속에 살던 아이가 한 뼘밖에 안 되는 길을 밤새 굽이굽이 돌아 세상 밖으로 나왔다. 먼 시간 속 무한광속의 흐름을 업고 열 달 동안 갇혀 있던 좁은 방을 용감하게 탈출했다. 모태의 안락함을 거부하고 자기를 기다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에 안도와 희열과 벅찬 감동을 안겨주며 신고식을 했다. 알을 깨고 나온 새처럼 생명의 환희를 풍겨냈다. 아이가 잉태되는 순간부터 여자는 엄마로 변한다. 엄마는 생명을 품은 자다. 아기는 여자가 엄마의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다. 어미의 마음은 자식의 아픔도 슬픔도 기쁨도 희락도 다 품고 가는 마음이다. 내가 엄마를 불러들인 건 어쩌면 내 아기 낳는 모습을 통해 그동안 쌓였던 말을 대신하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기에게 엄마란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고 아기에게 내가 어떻게 하는지 보란 듯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보여주었다. 내가 얼마나 아기를 힘들게 낳았고 아기에게 어떻게 엄마 노릇을 하고 있는지. 하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도 나를 이렇게 낳았을 것 아닌가. 엄마도 이런 통증과 온갖 섞인 감정들로 응집된 시간들을 경험했을 것 아닌가. 마음이 착잡했다. 유나에게 막무가내로 향하는 마음 찌릿찌릿 젖이 돌아 나오면 자동적으로 아기를 안고 젖을 물리게 되는 이 마음. 그런데 엄마는 왜 내게 젖을 먹이지 않았을까. 마음 속 깊은 곳에 꾹꾹 눌러놓았던 아픈 감정들이 슬며시 고개를 쳐들었다. 버려진 자의 고통과 아픔이 이와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분신 같은 아이에게 엄마는 왜 젖을 먹이지 않았는지 그동안은 혼자 생각하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이제는 묻고 싶어졌다. 아기에게로 향하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내 속에서 갈등과 번민이 뒤섞여 나를 괴롭혔다. 엄마는 너무도 평화스런 모습으로 유나를 안고 소파에서 잠들어 있는데 내 마음은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인영과 엄마의 관계를 알게 된 건 결혼을 결정하고 나서다. 그녀가 왜 엄마와 의논하지 않으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녀에게 말 못할 상처가 있는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엄마에 관한 한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런 그녀가 아기 낳을 때 엄마를 초청하겠단다. 비행기 표를 바로 한국으로 보냈다. 언제 그녀 마음이 변할지 몰라서다. 인영이 아기 낳은 후 아주 예민해졌다. 내가 보기엔 장모님이 최선을 다해 산모를 돌보고 아기를 챙기는데 무슨 불만이 있는지 자꾸 짜증내고 화냈다. 그녀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다. 유나를 보고 있으면 근심 걱정 모두 사라질 것 같은데 그녀는 왜 그리 착잡할까. 혹자가 산후우울증 같다 했다. 산후우울증(postpertum depression)은 산모의 약 10~20퍼센트 정도 발병하는데 대개 출산 후 4주 전후로 발병하고 발병 3~6개월 후면 증상들이 호전되나 치료 받지 않을 경우 증상이 일 년 넘게 지속된다고 한다. 약 85퍼센트는 우울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어 약물치료가 필요하다. 원인은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요소들이 얽혀 일어나는데 분만 후의 피로 수면장애 충분히 못한 휴식 아이 양육에 대한 부담과 걱정 생활상의 변화 신체상의 변화나 자아 정체성의 상실 등도 병을 유발한다. 산모의 자세가 중요하고 가족의 지지 특히 배우자의 관심이 중요하다고 한다. 인영이 산후우울증이 맞는 것 같다. 엄마에게 화내고 짜증낼 때 말고는 모든 의욕을 상실한 사람처럼 축 쳐져 있다. 우울해 하다가 슬퍼하고 때론 무기력에 빠진 사람처럼 멍 때리고 있다. 장모님은 산모가 밤에 잠을 자야 한다며 아기를 장모님 방으로 데려가 재우지만 인영은 불면의 밤을 보내곤 한다. 인영이 화를 내는 게 차라리 낫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멍하고 있는 건 더 마음 아프다. 처음 며칠은 정성을 다해 젖 물리고 아기를 곁에 두고 돌보는 것 같더니 언제부턴가 아기에게도 소홀하고 먹는 것도 시들해지고 자꾸 눈물을 보인다. 아빠가 죽었을 때도 자기 방에 들어가 문 잠그고 이불 뒤집어 쓴 채 울음을 삼키던 아이다. 그런 아이가 나를 보면 파르르 화를 내다가 금방 맥없이 앉아 있거나 혼자 훌쩍거리고 있다. 노아도 자기 아내가 심각한 감정 변화 있는 걸 눈치 챈 것 같다. "인영이 산후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 같아요." 산후우울증을 앓던 산모가 아이를 창문으로 집어 던져 살해했다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난다. 때론 자살하는 산모들도 있다던데... 그 아이가 나 때문에 힘들어 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것이 병이 되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머리가 혼란스럽다. "다 내 탓이네. 저 애가 저렇게 된 게."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냥 많은 산모들이 앓는 병이래요." "산모들이 다 앓는 건 아니잖나. 왜 저런 병이 왔겠나. 다 나 때문이야." "그렇지 않아요.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테니 기다려 봐요." "병원에 데리고 가봐야 하지 않을까?" "글쎄요. 인영이 병원에 가려고 할까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잖아요." "그렇긴 해. 저 아이가 그런 일로 병원 갈 애가 아니지. 그건 내가 잘 아네." "제가 좀 더 신경 쓸게요. 엄마도 알고 계셔야 될 것 같아 말씀드린 거예요." "알겠네. 내가 자네 볼 면목이 없네. 엄마라고 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무슨 말씀이세요. 엄마가 아니면 어쩔 뻔했어요." "나보다 다른 사람이 돌보는 게 어쩜 더 나았을지도 몰라. 나 때문에 저 아이가 더 힘든 시간 보내고 있을 지도 몰라."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목울대를 밀고 올라온다. 엄마가 딸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고 어린 손녀에게 푹 빠져 마냥 웃고 행복해하고 있었으니... 미안함과 서러움이 두루뭉수리 섞여 온 몸을 요동케 한다. 행여 그 아이 들을까 봐 꺼이꺼이 울음을 삼키는데 노아가 말없이 등을 토닥여준다. 사위 가슴에 안겨 더운 눈물을 쏟았다. "다 내 탓이네. 저 애가 저렇게 된 게." 이 말이 엄마와의 화해를 이끌어 낸 첫 말이 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노아와 엄마의 대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엄마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다 내 탓이네. 저 애가 저렇게 된 게." 순간 뒷목이 쭈뼛 서며 숨이 멎는 듯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냥 많은 산모들이 앓는 병이래요." 노아가 엄마를 위로하듯 말했다. "산모들이 다 앓는 건 아니잖나. 왜 저런 병이 왔겠나. 다 나 때문이야." 가슴이 뛰며 손끝이 저려왔다. 엄마의 또렷한 목소리가 다시 귓속을 파고들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이 돌보는 게 어쩜 더 나았을지도 몰라. 나 때문에 저 아이가 더 힘든 시간 보내고 있을 지도 몰라." 맞는 말이다. 엄마가 있으니 더 힘들다. 엄마에게 짜증부리고 화내도 마음이 풀리지 않고 내가 그럴수록 아기에게 집착하는 엄마가 싫다. 그런데 엄마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니.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냈으니 알고 있는 게 당연한 지도 모른다. 온갖 투정 다 부려도 엄마는 아무 느낌도 감정도 없이 다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에게 내 마음을 들킨 거다. 힘이 빠진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주저앉고 싶다. 엄마가 서럽게 울음을 삼키고 있다. 내가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듯 엄마도 내 앞에서 잘 울지 않았다. 딱 두 번 한 번은 중동에서 돌아온 아빠를 몰아세우다 힘에 눌려 아빠 품속에 머리를 박게 되었을 때고 또 한 번은 아빠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술을 얼마나 퍼마셨으면 간이 작살났느냐며 통곡했다. 그 이후로 엄마의 눈물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엄마가 애끊는 울음을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울고 있다. 나는 엉거주춤 문고리를 붙들고 섰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나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았다. 엄마의 서러운 눈물이 내 마음의 응어리를 녹여버린 것일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마음이 평화로웠다. 나의 갑작스런 변화에 놀라며 안절부절 못하는 건 오히려 엄마였다. "너 괜찮은 거니?" "응 나 괜찮아." 얼마 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엄마를 대하는 건지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엄만 괜찮으니까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 "아냐 엄마가 힘들지. 나야 가만 누워서 해주는 밥만 축내고 있는데 뭘." "인영아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지?" 엄마 눈에 불안의 빛이 깊어졌다. 참 묘하다. 내가 엄마를 적대시하고 표독스럽게 굴 땐 엄마 눈빛이 처연하긴 했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가 엄마를 엄마처럼 대하자 엄마는 오줌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아이러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어긋나는 것일까. 서로의 감정에 충실한 것도 죄가 되는 것일까. 엄마의 서러운 울음을 보고 눈 녹듯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응어리들이 막 끓기 시작한 죽 표면의 일렁임처럼 마음속에서 다시 일렁인다. 엄마와 나는 잘 될 수 없는 사인가 봐. 전처럼 지내는 게 어쩜 더 편할지도 몰라. 마음이 착잡했다. 하지만 더 이상 엄마를 가혹하게 대하고 싶지는 않다. 회복을 바라지 않는 자 누가 있으랴. 그럼에도 마음 깊은 곳에서 샘처럼 솟아나는 진실 된 갈망이 하늘에 가 닿기까지는 그 거리가 결코 가깝지 않다. 인영이 갑자기 변했다. 사람이 죽음을 앞두면 변한다더니... 나만 보면 날을 세우던 아이가 소금에 푹 전 배추처럼 야들야들 부들부들해 진 게 도무지 낯설다. 다정하게 대하는 그 아이를 볼 때마다 거대한 해일처럼 불안감이 밀려왔다. 나를 몰아세우고 날선 말로 아프게 하는 게 오히려 더 나았다. 좌불안석이다. 유나가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붉고 주름졌던 피부가 뽀얗고 탱탱해졌다. 속눈썹은 길고 검게 자랐고 머리는 놀놀한 게 미국인의 피를 받은 표시를 냈다. 방긋거리며 웃는 모습은 제 어미 아기 때와 쏙 닮았다. 인영과 정식으로 화해한 건 아니지만 불안하던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적응되었다. 인영이 나를 편안하게 대하는 게 내가 걱정하는 산후우울증의 심리적 기제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처음부터 이런 관계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우리는 그토록 긴 세월을 힘들게 살았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기쁨과 감사와 후회와 회한이 범벅이 되었다. 인영이 젖을 먹인다. 젖양이 늘어 아이가 먹고도 남아 유즙기로 짜내야 하는 판이다. 어디 저런 조그만 체구에서 젖이 흘러넘치도록 나올까. 생각할수록 감사하다. "너는 참 행복한 엄마다." "왜요?" "남들은 젖이 모자라 먹이고 싶어도 못 먹이는데 너는 젖도 많이 나오고 또 아기가 젖을 그리 쭉쭉 잘 빠니 얼마나 좋으냐." "젖이 많이 나오는 건 감사한 일이죠. 그런데 젖을 잘 빠니 좋다는 건 무슨 말이에요. 젖을 안 빠는 아이도 있나요?" 인영이 의외라는 듯 말간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네가 그랬잖니?" "내가 젖을 안 빨았다고요?" "그래. 네가 젖을 빨지 않아 결국 젖을 먹이지 못했잖니." "그게 무슨... 엄마가 젖을 안 먹인 게 아니고 내가 젖을 안 빨았다고요?"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아프다." 인영은 아기를 옆에다 눕힌 후 바짝 다가와 앉더니 다그쳐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그 때 이야기 좀 자세히 해봐요." "젖이나 다 먹이고 말하자꾸나. 젖을 먹이다 말면 어쩌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어서 내 얘기 좀 해 봐요." 유나가 옆에서 징징거렸지만 인영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그쳤다. 나는 유나를 안고 흔들며 이야기를 꺼냈다. "너를 배고 참 행복했었다.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고아였잖아. 네 아빠 만날 때까지 혼자였단다. 그러니 뱃속에 내 피붙이가 자라고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행복했겠니. 막달에 배가 유난히 컸어. 사람들이 쌍둥이 아니냐고 할 정도였지." 유나가 잠들었다. 아기를 침대에 눕히고 돌아서니 인영이 무릎을 고추 세워 두 팔로 붙들고 툭 건드리면 터질 듯 물 풍선 같은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너를 낳던 날 밤 밖은 칠흑처럼 어둡고 진통은 점점 심해졌지. 곧 아기가 나올 것 같았어. 집에서 멀지 않은 조산원에 용한 산파 할아버지가 있었어. 그 때가 밤 2시 경이었어. 서둘러 아기용품을 챙겨들고 조산원에 갔어. 문을 두드리니 산파가 잠이 덜 깬 표정으로 나오더라. 그 밤에 일이 난 거야." 한숨이 저절로 났다. 그 끔찍했던 기억은 떠올리기조차 싫었다. 말을 이어가지 못하자 인영이 또 물 풍선 같은 표정으로 재촉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엄마 어서......" "진통이 시작됐어. 방에 들어가 배를 움켜쥐고 있는데 산파가 들어왔어. 얼마동안 진통이 계속 되다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어. 그 때의 감격을 어찌 말로 다할 수 있겠니.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산파가 아무래도 아기가 하나 더 있는 것 같다는 거야. 쌍둥이 배 같단 소릴 듣긴 했지만 진짜 쌍둥일 거란 생각은 못했는데." 인영이 침을 꿀떡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가슴에 뭔가 치밀어 오르는 게 있어서 잠시 쉬어갈 판이었다. 인영도 더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 때는 정말 쌍둥이가 들어있는 줄 알았어. 그 순간의 느낌은 뭐랄까... 갑자기 복권을 맞은 기분이랄까. 예상치 못했던 복이 하늘에서 떨어진 거라고 생각했지. 가슴이 뛰었어. 잠깐이지만 행복했다. 흐음... 산파가 잠시만 참으라 했어. 그리고 일이 터진 거야. 그 찢어지는 고통... 나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지." 숨을 죽이고 듣고 있던 인영의 눈에 눈물이 고이려 했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던 표정이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깨어나 보니 읍내 큰 병원이었어. 기절한 사이에 병원에 실려 온 거야." 나는 또 숨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다음 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지금까지 꺼내기도 기가 막혀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본 적이 없다. 더군다나 인영 앞에서 그 끔찍한 일을 말해야 한다니... 내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큰 숨을 내리 쉬자 인영이 말없이 나를 안아줬다. "엄마 힘들면 지금 이야기 하지 않아도 돼. 그냥 가만히 있어요." 어느 새 눈물이 사정없이 흘렀다. 그 때 일을 생각해도 그랬지만 인영이 내게 다가와 나를 안아주고 있는 그 상황 때문에 더 눈물이 났다. 인영에게 기대어 얼마를 울었는지 모른다. 속이 뻥 뚫리는 거 같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이야기는 나도 나중에 큰 병원에서 깨어난 뒤에 들었단다. 그날 너를 낳고 아기가 또 나온 게 아니고 너를 싸고 있던 자궁이 뜯겨져 나왔다는 것을..." "악... " 인영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나는 얼른 그 아이를 안았다. 그 아이는 한참을 흐느껴 울다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충격적인 사실 앞에 속수무책 무너져 내린 여린 감성이 거기 있었다. 우리는 한 데 엉켜 울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유나가 깼다. 품에 있던 인영을 떼어내고 유나에게로 갔다. 우는 아기를 고추 세워 안고 어미에게로 갔다. 인영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로 더듬더듬 티슈를 찾아 얼굴을 닦은 후 아기를 받아들었다. 젖이 도는지 인영이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사흘 동안 병원에 있었어.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죽을 뻔한 걸 겨우 살렸다더라. 삼일 만에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네가 있었다. 사흘 동안 동네 할머니가 보리차를 끓여서 입에 떠 넣어주었다더구나. 조막만한 너를 보고 왈칵 울음이 솟구쳐 한동안 멍청이 서 있었어. 그러다 정신이 들고 보니 젖을 먹여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젖무덤을 문지른 후 젖을 물렸는데 아기가 젖을 안 빠는 거야. 기가 막혔단다. 아기에게 어서 젖을 빨라고 미친 듯 소리치며 계속 젖을 물렸어. 하지만 너는 젖을 먹는 대신 울음으로 내게 대답했어. 절대 젖을 빨지 않았단다." 그 때 인영이 왜 젖을 빨지 않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자기를 떼어놓고 여행을 떠난 부모를 기다리던 아이가 있었다. 처음엔 부모를 기다렸다. 부모가 오지 않았다. 나중엔 부모가 오면 어떻게 화를 낼까 궁리했다. 그래도 부모가 오지 않았다. 그러다 막상 부모가 왔을 때는 입을 다물고 부모를 외면해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기는 모든 걸 다 안다고 한다. 다만 말 못하고 표현만 못할 뿐이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아는 시기가 신생아 때라고 한다. 어쩜 어린 것이 엄마를 기다리다 엄마 젖을 그리다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젖을 빨지 않게 된 그 아이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있었을까. 그래서 그 아일 생각하면 더 마음 아프다. 인영은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 시선 속엔 오만 가지 감정이 녹아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결국 너는 젖을 먹여 키우지 못했고 자궁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거야. 그래서 너를 외롭게 키우게 된 거고." 인영은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울음을 참느라 꺽꺽 댔다. 유나는 엄마의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젖을 힘차게 빨고 있었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인영은 젖을 먹이는 내내 엄마 소리를 되뇌었다. 어디 먼 데 있는 엄마를 찾는 아기처럼 흐느끼며 엄마를 찾았다. 그 흐느낌 속에 아픔과 원망과 미움과 분노와 회한과 후회와 질책과 모든 지난 시간의 감정들이 다 녹아 있었다. 유나의 수유가 끝나고 아기를 침대에 눕힌 뒤 인영은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으며 무너져 내렸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울기만 하던 인영이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엄마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아니다 아냐. 그건 네 잘못이 아냐." "제 잘못이에요.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를 그토록 깊게 오해하고 있었다니 정말 제 자신이 끔찍해요. 절 절대 용서하지 마세요. 엄마에게 용서 받을 자격도 없어요." "그런 말 하지 마라.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 관점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는 동물이란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오해하고 있었던 것뿐이야. 이제라도 오해를 풀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니. 이 엄마가 네게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네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더 큰 잘못이었어." "아니에요 엄마. 그동안 저 때문에 당했을 고통을 생각하면 흑흑흑......" 인영은 더 이상 울음을 참지 않았다. 작고 여린 그 아이가 진동하듯 흔들며 폭풍 눈물을 쏟아냈다. 그날 우리 모녀가 쏟아낸 눈물은 모천(母川)이 되어 흘러내렸다. 엄마와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이 많았다. 삼십 년 간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많았다. 퍼내도 마르지 않는 깊은 산속의 옹달샘처럼 내 속에선 끊임없이 이야기가 흘러나왔고 내가 엄마에게 그렇게 많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엄마 우리 이젠 헤어지지 말고 함께 살자." "호호 그럴까. 내가 이런 생활을 얼마나 그리워했는데. 어쩌다 우린 지금까지 이렇게 살지 못했을까?" "내가 문제지 뭐. 진즉에 엄마한테 내 고민을 털어놨으면 엄마도 모든 사실을 이야기 했을 테고 그러면 그렇게 골이 깊진 않았을 거 아냐." "글쎄 말이다. 언제 적 일이니 이게. 지금도 또렷이 생각나. 네가 나를 적대감을 갖고 대하던 때가. 설마 네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 상상도 못했다. 재가 갑자기 왜 저러나 싶었지. 먹고 살기 바빠 너를 세심하게 돌보지 못한 내 탓이야." "동네 아줌마들이 문제였어.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어." "항상 동네 아줌마들의 이바구가 문제긴 하지. 인간이란 다 그런 거란다.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상처가 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 한번 내 뱉으면 주워 담을 수도 없는 게 말인데 말이야. 이솝의 주인이 이솝을 시험해 보려고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을 가져오라 하니까 동물의 혀를 가져왔다지. 그래서 이번엔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또 동물의 혀를 가져왔대. 세상에서 가장 귀하면서도 가장 나쁜 짓을 할 수 있는 게 혀라는 거야. 얼마나 상징적인 이야기니." "지혜롭게 말하고 살기가 쉽지 않아요. 말을 해도 문제 안 해도 문제잖아. 그 때 동네 아줌마들의 말도 문제였지만 그 말을 들은 내가 엄마한테 말하지 않고 혼자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 건 더 문제였어요. 그 때 엄마한테 내가 이런 말을 들었는데 그게 사실이냐고 한번만 물어봤어도 그 긴 세월을 고통 속에 살지 않았을 것을. 내가 엄마를 얼마나 맹렬히 원망하고 미워했는지 몰라요. 참 어리석지요?" "넌 그 때 어렸잖니. 성격도 소심하고. 그럴 수 있는 일이었지. 지금이라도 이렇게 너와 잘 지낼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쁘다. 엄마는 이제 지나온 시간들은 다 잊을 거야. 지금부터 엄마와 딸의 관계가 새로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 "엄마에게 못되게 굴었던 것 다 용서해 주세요. 이제부터 잘 할게요." "용서는 무슨 다 몰라서 그런 건데... 앞으로 잘 살자 우리." 어느 새 왔는지 노아가 카메라를 들이댄다. "김 치!" ( 끝 ) --------------------------------------------------------------------------------- [수상소감] 마음 따뜻해지는 글 쓰고 싶다 관에 안치된 시신을 망연한 눈으로 바라보다 수상 소식을 전해 들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주검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물댄다. 경계에 선 순간. 매 순간이 그렇다. 때론 명료하기도 하고 때론 안개 속인 듯 희뿌옇다. 머물 수 없어 앞으로 나가지만 시작점이기도 하고 끝이기도 한 길. 소설의 길이 내겐 그렇다. 그 길 위에서 어우러진 그 시간들 속에서 울고 웃는 우리들의 이야기 마음 따뜻해지는 글을 쓰고 싶다. 소설의 길로 이끌어준 김 종광 교수님 문우 해나와 은아 사랑하는 가족들 경계에서 한걸음 뗄 수 있게 기회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리며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약력: 1959년생. 한국문서선교회 편집장 지냄. 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과 졸업. --------------------------------------------------------------------------------- [심사평] 엄마와 딸의 오해와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엄마의 난산으로 딸은 미숙아처럼 왜소하게 자랐다. 그런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그늘지게 살면서 잘 키우지 못한 엄마를 원망한다. 엄마는 딸과의 관계를 사랑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안타갑기만 하다. 결국 딸은 자신이 아이를 낳은 다음에 엄마의 사랑을 이해한다는 해피엔드의 결말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화자의 시점이 엄마에서 새 아빠로 또 사위로 딸에게로 바뀌는 복잡한 구성으로 되어있어 흐름이 매끄럽지 못한 단점이 있다. 가작의 이유이다. 심사위원-이언호·명계웅

2018-03-27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 단편소설 부문-당선작] 밤의 소리

하우 아 유? How are you? 116가 횡단보도에서 그가 손을 들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빠른 걸음으로 그가 길을 건너자 그의 아이가 잰걸음으로 따라왔다. 그들은 나와 같은 아파트 건물에 살고 있었다. 공용세탁실에서 쓰레기 수거장에서 동네 놀이터에서 수퍼마켓에서 나는 그와 마주쳤고 인사를 주고 받았다. 예외없이 우리는 각자의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그의 아이 케인은 그동안 내 얼굴을 익혔는지 생글생글 눈웃음을 띄며 하고 싶은 말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사교적인 아이 특유의 말투로 엄마는 지금 회사에 가 있고 몇 개월 후면 동생이 태어날 거라고 묻지도 않은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는 아들의 발랄함이 거리낌없이 펼쳐지는 상황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난감하다며 웃었다. 반면 케인이 말하는 동안 나의 아이 폴은 내 손을 꼭 쥐고 등 뒤에 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나는 이 아이의 경계심이 날카롭게 타인을 향해 있는 상황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단순한 수줍음이라 치부하기엔 폴의 긴장 상태에는 집요하고도 날선 데가 있어 상대를 곧잘 당황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나올 둘째 아이는 케인과 폴의 성격을 반씩 닮으면 좋을 것이라 그가 농담을 했고 나는 진심으로 그러길 바란다며 미소 지었다.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연대감 같은 것이 있다. 서로 부담없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고 부모들이 더 빨리 친해지곤 했다. 게다가 그는 아이 하나를 돌보며 집안살림을 전담하는 가정주부였다. 주부라는 직업을 가진 남성은 젊은 여성주부들에게서 특히나 환영받는 존재였다. 그 스스로도 그 점을 인식하고 있었고 즐길 줄 알았다. 나 역시 그의 아내를 부러워하는 주부 중 하나였다. 한참을 횡단보도 앞에 서서 그와 소소한 걱정거리에 대해 얘길 나누었다. 광둥어 억양과 한국어 억양의 영어가 한데 뒤섞였다. 낯선 언어가 사방에서 들리고 제각각의 말투로 영어를 구사하는 뉴욕의 길거리에서 그와 나의 대화는 전혀 이상할 것 없었다. 행인들이 우리에게 익스큐즈 미 길을 비켜달라고 했다. 폴은 몸을 움직이는 활동량이 적었다. 다른 아이들이 내키는대로 걷고 뛸 때 폴은 내 옆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같이 일어났고 조금 걸으면 따라 걸었다. 작은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유일하게 폴이 가장 큰 동작을 보일 때는 낯선 사람이 우리에게 말을 걸기 위해 가까이 오는 경우였는데 다가오던 이가 미안해할 만큼 멈칫 놀라며 내 등 뒤로 숨었다. 폴은 한적한 공원의 나무 아래 쪼그려 앉아 개미를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단풍이 들기도 전에 떨어져버린 낙엽이나 곧 넘어질 것처럼 비틀대며 뛰어가는 아이를 따라가는 다른 엄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눈으로만 내내 개미를 쫓던 폴이 고개를 들며 코를 훌쩍였다. 날이 추워진 까닭이었다. 10월부터 이른 겨울을 맞았다. 강에서 불어오는 한기와 오래된 건물 사이에서 이는 칼바람이 체감온도를 더욱 낮췄다. 폴은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웠다. 거센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잦은 산책에도 바람에 익숙해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추위가 계속되자 폴은 집밖에 나가는 것을 거부했다. 바깥에 나갈 채비가 시작되면 그는 외투를 모자를 양말을 온 힘을 다해 멀리 집어던졌다. 그토록 확고한 의지를 꺾을만한 요령이 내겐 없었다. 나 역시 반드시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우유나 계란 따위는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한동안 외출을 하지 않고도 견딜 수 있었다. 어차피 폴은 그외의 것은 입에 대지 않았다. 하루를 버틸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양을 먹었고 가장 최소한으로 움직였다. 거실에 가만히 앉아 창문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고층건물들이 하늘을 메우는 도시 그 속에 촘촘하게 들어선 건물에는 창문이 빼곡했다. 내가 사는 집 창문 너머에는 전망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도로와 건물이 있고 차와 사람이 오가는 흔한 광경이 보이지 않았다. 창문 바깥에는 오로지 갈색 벽돌을 이어붙인 벽이 버티고 있었다. 집안에서는 바깥에 부는 바람을 가늠할 길이 없었고 비나 눈이 얼마나 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아파트 복도에 있는 창문도 무용지물이었다. 기껏해야 낮인지 밤인지 짐작할 용도로 쓰였다. 내다볼 것이 없는 창문은 악명높은 물가의 도시에서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고 오만하게 말하고 있었다. 더 나은 환경으로 이사를 가던지 그렇지 않으면 참고 견디라고 보잘 것 없는 창문이 말했다. 하루에 한 번 오전에 단 한 번 햇빛이 잠시 창가를 비추고는 사라졌다. 제 할 일을 한 것이다. 키가 큰 창문이 기고만장하게 나를 내려다 보았다. 나는 매번 모든 싸움에서 이겨본 적이 없었다. 어린 아이와의 신경전에서도 창문과의 우격다짐에서도.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게 더 쉬웠다. 보이지 않는 대신 온갖 소리가 들어왔다. 낡은 아파트 나무바닥으로 옆집 여자의 하이힐 소리를 들었고 윗층에 사는 청년의 부산한 움직임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도심을 종횡하는 구급차와 소방차 사이렌은 건물 사이 솟아있는 빈 공간을 타고 종일 울려퍼졌다. 그중에서도 견디기 힘든 소리는 아주 가까운데서 크게 들려왔다. 주로 여자가 악에 받힌듯한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는 울음으로 변했다가 다시 비명이 되었다. 반복되는 싸움 속에서 여자와 남자가 내지르는 말은 대부분 비슷했고 한정적이었다. 가끔은 저들이 영화의 한 장면을 되풀이하는 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어둑한 밤이 온전히 내려앉자 여자의 악다구니가 들렸다. 또 시작이군 나는 커튼으로 창문을 덮었다. 불운한 소리일수록 거침없이 들어왔다. 창문과 커튼이 막지못한 소리는 기어코 침실을 비집고 들어갔다. 소리를 손으로 잡을 수 있다면 손아귀에 움켜쥐고 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온몸을 비틀어대는 것은 폴이었다. 선잠에 잔뜩 화가 난 폴은 두 손으로 머리를 세게 두들겼고 멈출줄 몰랐다. 결국 아이를 일으켜 안고 거실로 나왔다. 폴은 조명 불빛에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순간 모든 소리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갓난아기의 비명도 그들의 싸움도 멈췄다. 반복되는 패턴에 따르면 지금은 조용해질 순서가 아니었다. 모든 동작을 멈추고 혹여나 들려올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타닥타닥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현관 외시경으로 복도를 내다보았다.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백팩에 옷을 찔러 담으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더 이상 불쾌한 소리들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밤의 시간은 정적과 잘 어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양수가 터져 급하게 병원에 가야하는데 오늘밤 케인을 봐줄 수 있나요? 잠시 후 그는 잠이 든 케인을 안고 거듭 미안해했다. 아내의 상태가 호전되면 가능한 빨리 돌아오겠다고 했다. 출산예정일이 아직 두 달이 남아 있었다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초조해했다. 케인을 내게 맡기고 그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케인은 몸집이 큰 편이었다. 익숙치 않은 무게가 버거웠다. 내던지듯 침대 위에 눕혔지만 케인은 뒤척이지 않았다. 나는 케인에게 침대를 내어주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다급한 뒷모습이 떠올라 밤새 뒤척였다. 나도 모르게 잠이 잠깐 들었던 것 같다. 창밖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는데 확실치 않았다. 어둠이 눅눅하게 내려 가시지 않은 새벽이었다. 주변의 정물들이 하나씩 잠에서 깨어나 웅성거렸다. 동살을 잡아끄는 것은 주로 사이렌 무전기 자동차 엔진 고함 비명 탄식이었다. 창밖 벽돌 틈새가 보일만큼 환해지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불편해보이는 거대한 몸집의 경찰이 힘겹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파트 오층에 사는 여성이 새벽에 투신했다고 정황조사에 협조를 구했다. 평소 오층 부부와 알고 지냈는지 지난 밤 그들이 싸우는 소리를 당신도 들었는지 이전에도 싸우는 걸 들은 적 있는지 얼마나 자주 싸웠는지 가능한 한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달라고 했다. 나는 어젯밤 오층 남자가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코 앞에 있는 좀도둑도 놓칠 것 같은 경찰은 그때가 몇 시였는지 그의 옷차림과 행동 등에 관해 묻고 대답을 적었다. 질문이 거의 끝났는지 경찰은 표정을 바꾸고 여유를 보였다. 그는 나를 안심시켜주고자 했다. 그의 알리바이를 확인해줄 몇 명의 증인이 더 있으니 조사과정에서 크게 번거로운 일이 생기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타살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아 자살사건으로 잠정결론을 내린 상태이므로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어느 새 두 아이들은 모두 깨어 옆에 와 서 있었다. 경찰은 아이들을 보자 입가에 웃음을 띄웠다. 형제가 있군요 서로 닮은 데라곤 없는 아이들을 보며 그가 말했다. 아니에요 의아해하는 경찰을 등지고 나는 케인과 눈을 맞추었다. 엄마는 어젯밤 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갔으니 그동안만 우리와 함께 있는 거야 기다릴 수 있지? 평소 눈웃음을 잘 치던 케인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아이 헤잇 더 베이비 I hate the baby. 내가 난처해하자 놀랍게도 케인은 다시 순한 아이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얼른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경찰은 이 작은 소동을 파악한 후 펜을 호주머니에 끼우고 수첩을 덮었다. 동생이 있다는 건 행운이라며 케인을 향해 커다란 손을 내밀어 축하의 인사를 청했다. 나는 그제서야 오층에 아기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경찰은 문을 나서며 아기가 잠든 사이 사고가 발생했고 지금은 보호센터에 맡겨져 있다고 알려주었다. 케인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간단한 아침식사를 내어주었다. 현관문을 여는 열쇠소리가 들렸다.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고 눈에 띄게 수척해진 남편이 들어왔다. 반쯤 내리감긴 그의 눈은 이른 아침에 무슨 일로 케인이 와 있는지 말없이 묻고 있었다. 양수가 터졌대. 그래서 힘들었겠네 미안. 나 눈 좀 붙일게. 한 시까지 다시 나가 봐야해… 맺지도 못한 말이 끊겼다. 대략 상황 이해가 끝났다는 뜻이다. 그는 마른 기침을 하며 잠을 청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미처 내뱉지 못한 말을 침처럼 삼켰다. 나는 먼저 시비를 걸지 않는 관성이 생긴지 오래다. 화가 나면 덮었다. 화는 사라지지 않고 의지와는 상관 없이 몸집을 키워 불쑥 다시 나타났다. 시선을 회피하거나 그것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외면하거나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버렸다. 남편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힘들었겠네 미안. 힘든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었고 누가 누구한테 미안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케인인지 그의 엄마인지 아빠인지. 오층의 그녀인지 그인지 아기인지. 경찰인지 아니면 나인지. 남편은 지난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아니 그는 힘들었겠네 미안이라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고 일어나면 기억조차 하지 못할 말이다. 그는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었다. 그에게는 당장 잠을 자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분명히 그것은 그의 잘못이었다.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그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나는 뒤섞여 엉켜버린 화를 감당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치밀어 오르는 그것이 분노인지 슬픔인지 부끄러움인지 죄책감인지 구분하지도 못했다. 다만 화를 낼 상대를 찾고 있었다. 나 역시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의 싸움은 성가신 소리에 불과했다. 시끄러우니 저들을 말려달라고 신고라도 했다면 달라졌을까. 계단을 내려가던 남자를 막았다면. 잠이 든 아기를 덩그러니 남겨두고 창문으로 향하던 그녀는. 퍽. 둔탁한 소리였다. 폴은 책장 앞에 나동그라져 있었고 그 앞에 케인은 장난감 자동차 하나를 손에 움켜쥐고 있었다. 숨마저 멎을듯이 놀란 폴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제서야 울음을 터뜨렸다. 케인은 지난 밤 화를 억누르며 계단을 내려가던 남자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자지러지게 우는 폴을 안아들고 입고 있던 옷으로 급히 지혈을 했다. 폴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를 보자 케인은 겁에 질려 의기소침해졌고 파자마 위로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벨이 울렸다. 그의 전화였다. 케인은 아빠로부터 걸려온 전화임을 직감하고 달려왔다. 그가 말을 하지 않았다. 헬로 통화 끊긴거 아니죠? 아기 낳았어요? 산모는 어때요? 미미한 잡음이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그는 분명히 전화를 끊지 않고 있었다. 그는 떨고 있었다. 아내가 아내가 갑자기 갑자기 새벽에 과다출혈로 죽었어요. 엄마 아빠를 곧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케인은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며칠간 나는 고열에 시달렸고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었다. 아픔이 허용되지 않는 이상 흔한 감기도 비켜 지나갔다. 이번에는 피할 재간이 없었다. 계속된 구역질에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잠을 자고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잠이 들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지 못했다. 눈을 떠보니 어둡지 않았다. 적어도 밤은 아니었다. 순간 실내의 갑갑한 공기가 목을 죄어와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옷장 깊숙이 들어가 있는 외투를 꺼내 입었다. 바깥 날씨가 유난히 추우니 조금만 더 참으라는 남편의 만류를 뿌리쳤다. 바깥으로 나와 숨을 들이마셨다. 한겨울의 알싸한 공기가 나쁘지 않았다. 춥다한들 어디로든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걸어야 했다. 걷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건물 밖 한 켠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 곳에는 꽃과 카드 서너 개가 놓여있었다. 그녀와 교류가 없던 이웃들이 마련한 위로의 공간이었다. 그 소박한 조문소에 누워있는 꽃들은 추위에 버썩 얼어 있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카드 위에 고아둔 돌마저 하얗게 굳어 있었다. 뒤로 출입을 통제하는 폴리스라인이 보였다. 그 너머를 바라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걷고자 하는 나의 시도는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로 끝이 났다. 고개를 돌리자 맞은 편에서 낯선 두 사람과 케인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케인 엄마의 눈매와 닮은 얼굴의 두 여자였다. 대면해야 할 상황이 버거웠지만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이 이미 너무 가까이 와 있었다. 케인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홍콩에서 외할머니와 이모가 왔다며 웃어 보였다. 두 사람은 지친 모습이 역력했고 케인은 멀리서 온 가족의 방문에 신이 나 있었다. 대조적인 그들의 모습에 나는 뭐라 대응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두 사람이 영어를 할 줄 아는지도 알지 못했다. 더 머뭇거릴 순 없었다. 아임 쏘 쏘리. I'm so sorry. 조금 더 크게 말하려 했지만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이 이모라고 소개한 젊은 여자는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일주일 후에 차이나타운에서 장례식이 있어요. 그녀는 영어를 할 줄 알았다. 그녀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케인을 의식하고 그만 두었다. 케인의 할머니가 내게 광둥어로 몇마디 말을 전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케인 이모의 얼굴을 올려다봤지만 그녀는 굳이 통역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신이 한 말을 내가 이해했을 거라 믿는 듯 더 가까이 다가와 말을 덧붙였다. 이번에도 역시 케인의 이모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나는 두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그들의 사이에 서 있는 케인을 내려다보았다. 아빠는 아기를 만나러 병원에 갔다고 케인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아빠는 이제 자기보다 아기를 더 좋아한다며 심통을 내고 있었다. 그만 집에 들어 가자고 케인의 이모가 재촉했다. 걸음을 옮기는 일행을 따라가며 케인은 이따가 아빠와 숨바꼭질을 하러 공원에 갈 거라고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 엄마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내게 다시 손을 흔들었다. 바람이 불자 바스라진 꽃잎이 흩어졌다.__ =========================================================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 단편소설 부문-수상소감] 글쓰기 망설이지 않을 것, 모든 분들께 감사 이윤경 / 1980년생, 현재 뉴욕 거주 어떤 글이라도 좋으니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같이 출근하고 퇴근하고 밥먹고 씻듯이 글도 그렇게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글 쓰는 일은 학업과 직장과 육아의 흐름 속에서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고 매번 뒤로 밀려났습니다. 하루 하루를 보내는데 급급한 나머지 글을 읽는 일도 쓰는 일도 자꾸만 미뤄두기만 했습니다. '지금'이 아니라 '언젠가' 쓰리라는 결심은 항상 마음 언저리에 무겁게 남아 있었습니다. 단편 <밤의 소리>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휴대폰 메모장에 써 내려간 글이었습니다. 떠오르는 문장을 쓰고 그 다음날엔 그 문장을 고쳤습니다. 쓰고 고치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짧은 소설 하나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써야 할 아직 쓰지 못한 글들이 까마득합니다. 해야 할 일들이 있기에 용기내어 한걸음 더 내디뎌 봅니다. 이번 기회에 많은 격려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글쓰는 일 앞에서 망설이지 않기를 저 스스로에게 바랍니다. 끝으로 제가 무슨 일을 하든 믿고 지지해주는 가족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드립니다. ------------------------------------------ 심사평 1. 밤의 소리 (이윤경) 고층아파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애환이다. 남편이 야근하던 날 옆집남자가 문을 두드린다. 아내의 양수가 터져 병원에 가야하니 아이를 맡아 달란다. 그녀의 아이 또래의 개구쟁이 이웃집아이는 장난이 심해 그녀 아들의 머리를 터트린다. 그 와중에 부부싸움을 하던 이웃 여인이 창문 아래로 투신했다고 경찰이 증인조서를 받으러 왔다. 병원에 실려 간 산모는 난산으로 사망을 했단다. 작가는 고요한 밤의 가슴 아픈 인간 드라마를 잔잔한 필체로 불협화음의 꽃을 피고지게 한다. 문장이 편하고 절제가 돋보이는 우수작이다. 심사위원=이언호.명계웅

2018-03-26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 단편소설 부문-수상소감] 글쓰기 망설이지 않을 것, 모든 분들께 감사

어떤 글이라도 좋으니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같이 출근하고 퇴근하고 밥먹고 씻듯이 글도 그렇게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글 쓰는 일은 학업과 직장과 육아의 흐름 속에서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고 매번 뒤로 밀려났습니다. 하루 하루를 보내는데 급급한 나머지 글을 읽는 일도 쓰는 일도 자꾸만 미뤄두기만 했습니다. '지금'이 아니라 '언젠가' 쓰리라는 결심은 항상 마음 언저리에 무겁게 남아 있었습니다. 단편 밤의 소리>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휴대폰 메모장에 써 내려간 글이었습니다. 떠오르는 문장을 쓰고 그 다음날엔 그 문장을 고쳤습니다. 쓰고 고치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짧은 소설 하나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써야 할 아직 쓰지 못한 글들이 까마득합니다. 해야 할 일들이 있기에 용기내어 한걸음 더 내디뎌 봅니다. 이번 기회에 많은 격려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글쓰는 일 앞에서 망설이지 않기를 저 스스로에게 바랍니다. 끝으로 제가 무슨 일을 하든 믿고 지지해주는 가족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드립니다. ------------------------------------------ 심사평 1. 밤의 소리 (이윤경) 고층아파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애환이다. 남편이 야근하던 날 옆집남자가 문을 두드린다. 아내의 양수가 터져 병원에 가야하니 아이를 맡아 달란다. 그녀의 아이 또래의 개구쟁이 이웃집아이는 장난이 심해 그녀 아들의 머리를 터트린다. 그 와중에 부부싸움을 하던 이웃 여인이 창문 아래로 투신했다고 경찰이 증인조서를 받으러 왔다. 병원에 실려 간 산모는 난산으로 사망을 했단다. 작가는 고요한 밤의 가슴 아픈 인간 드라마를 잔잔한 필체로 불협화음의 꽃을 피고지게 한다. 문장이 편하고 절제가 돋보이는 우수작이다. 심사위원=이언호.명계웅

2018-03-26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 : 수필 부문] 동백 아가씨 - 이한창 <장려>

내가 난생처음 동백꽃을 본 것은 어릴 적 고향 집 담 너머 옆집에서 전통 혼례식이 치러지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앞마당 낮은 돌담을 따라 세워진 외지에서 사들여 온 둥근 화환들 속에 짙푸른 동백 잎새와 붉은 꽃잎과 그 안에 샛노란 수술의 동백꽃이 아름드리 꽂혀 있는 것을 본 순간 나는 눈이 동그래져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같으면야 추운 겨울에도 비닐하우스 재배로 꽃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그 옛날 두메산골의 엄동설한에 그런 생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전설의 고향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어릴 적 동백의 선분홍 붉은 꽃이 어찌나 곱고 선명했던지 40여 년이 지났어도 정물화 사진을 찍어 마음 속에 간직해 둔 마냥 눈에 선하다. 원래 동백은 따뜻한 바닷가나 섬지방에서 바다의 습한 기운을 좋아하는 차나뭇과의 상록수다. 그러나 겨울철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많은 미 북동부 지방에는 그 꽃봉오리가 쉽사리 얼어 버려 원예수로는 버지니아 위쪽 지방부터는 키울 수 없다고 들었다. 하여 실내용으로 가꾸어 보려고 수년 전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동백 묘목으로 어렵사리 구해 분재 화분에 심어 두었는데 각별히 지난해 가을부터 햇볕과 바람이 잘 드는 곳에 두고 이번 겨울에는 실내 창가에 두어 정성들여 물을 주면서 관리한 덕인지 이 녀석이 꽃봉오리를 하나씩 보여 주기 시작하더니 지난 연말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지금 여섯 꽃봉오리에서 둘이 피었으니 몇 주 후면 나머지 것들도 부끄러움을 잊고 꽃잎을 살포시 터트릴 것을 기대하며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애들 얼굴보다는 거실 창가에 핀 동백꽃을 살펴보며 오는 봄을 기다리는 것이 요즘의 일상의 재미이다. 집 뒤 살갑게 얼어붙은 호수 건너편 자작나무 숲속에서 간헐적으로 들려 오던 목이 긴 철새들의 울음소리도 정적만을 남기고 사라진 이 차가운 겨울밤. 식구들이 다 잠든 자정이 넘는 이 시간에 침대 위에서 뒤적뒤적하다 아래층 거실로 내려와 불을 켜고 창가에 다소곳이 핀 동백꽃을 살포시 살펴봤다. 농익은 분홍빛 꽃잎이 새색시 입술처럼 곱고도 붉다. 그러면서 내 마음 속에 조용히 생각해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또 하나의 추억 속의 동백꽃이 피어오른다. 토모미(智美). 내가 그녀의 집에 초대받은 것은 1995년 12월 31일이었다. 일본 관동지방의 남녘 끝자락인 카나가와(神奈川)현 미우라(三浦)시에 있는 그녀의 집에 가기 위해 동경에서 전철로 족히 2시간을 달려 종착역에서 미리 나를 마중 나온 그녀와 같이 다시 마을버스로 들어가 전형적인 일본식 목조로 된 그녀의 바닷가 집에 도착한 것은 해가 저문 저녁 무렵이었다. 일본에서는 신년 새해가 일 년 중에 친척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큰 명절인데도 나만을 특별히 초대한 것을 알아채고서는 내심 긴장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그녀의 가족들은 현관에 나와 반가운 얼굴로 정중히 맞아줬고 서로 인사를 나눈 나를 그녀의 어머니는 향나무 욕조에 따뜻한 물이 담긴 욕실로 안내해 줬다. 목욕을 마친 후 준비해준 실내복(유카타 浴衣)으로 갈아입고 다다미가 널찍이 깔린 거실에 들어서자 낮게 놓인 장식대 위에는 그녀의 어릴 적 사진과 스무 살 성인식 때 찍은 기모노 입은 단아한 사진이 장식되어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나는 대를 이어 건축업을 하는 그녀의 아버지와 오빠 이렇게 남자 셋이서 일본 술을 그녀의 어머니가 한 솥 가득히 만들어 준 오뎅탕을 안주 삼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밤늦도록 마셨다. 그러나 그녀의 집 정원에 푸르른 동백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다음날 새해 첫날 해가 중천에 떠 늦게 일어나 마을을 구경시켜 주겠다던 그녀와 함께 근처 신사(神社)를 산책하고 그녀의 집 대문에 되돌아 와서였다. 드물게도 그녀는 대학 졸업 논문으로 조선 통신사를 연구했고 더 나아가 통신사의 발자취를 직접 느껴보겠다며 일본 열도를 기차로 횡단해 다시 배로 대마도까지 갔었다. 그리고 한국어를 배우러 일 년간 한국 유학도 했었고 가야금도 열심히 배워서 어느 한국 신문사 기사에도 소개된 적이 있는 그녀와의 셀 수 없는 나에게는 과분한 추억들 …. 주마등처럼 흐르는 이 추억들을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동백 열매에서 짜낸 동백기름이 어두운 밤 등불을 밝히는 데 쓰인 것처럼 토모미와의 인연은 외롭기만 했던 나의 가난한 동경 유학 생활에 밝은 등불과도 같은 존재의 아가씨였을까? 아니며 옛 여인들의 삼단 같은 머릿결에 단정히 윤을 내는 데 쓰이는 것처럼 그녀와의 만남이 각박했던 나의 유학 생활 속에 웃고 견딜 수 있는 매끄러운 윤활유 같은 여인이었을까? 나비나 벌 같은 곤충이 없는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는 동백은 꿀을 좋아하는 아주 작고 귀여운 동박새가 꽃가루를 옮겨 열매를 맺게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는 그 꽃가루를 옮겨 줄 그런 새가 맺어준 인연이 없었던 탓에 결국 열매를 맺지도 못한 채 그 후 20여 년을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지금은 아는 지인을 통해 들어온 이야기로는 그녀가 오오사카 주재 한국영사관에서 몇 년을 일하다 그만두고 외동딸을 두었으며 코베시 근교에 살고 있다는 정도다. 5년 전 일본 출장으로 동료 일행과 나고야(名古屋)를 들를 때 한 시간 정도면 만날 수 있는 지근 거리까지 간 나였지만 지인을 통해 전화 연락이 되어 그녀만 허락한다면 서로 만날 수도 있었지만 망설임 끝에 결국 다시 동경 숙소로 발길을 되돌리고 말았다. 자신을(이) 사모했던 사람에게는 언제나 옛 그 모습과 그때의 감정 그대로 남아 주길 원하는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그녀를 만날 반가움보다 나이 들어 새치마저 생긴 나의 중년의 모습을 보여 주기에는 나 자신이 용기가 없었다. 아니 그녀의 마음속에 담겨있는 20여 년 전의 앳된 청년이던 나의 모습을 그녀의 기억 속에 새겨둔 채로 살아가 주길 바라는 나의 이기적인 생각 때문일까! 그녀의 마음 속에 동백 꽃잎에 새겨진 말 못 할 나와의 사연을 가슴에 안고 사는 그런 '동백 아가씨'로 남아주길 바랄 뿐이다. 그녀와의 인연도 동백꽃의 습성처럼 아름답게 화사히 피다 갑자기 봄바람에 톡 떨어져 버리는 그런 뒤끝이 산뜻한 추억이길 바랄 뿐이다. 지금쯤이면 잔설이 쌓인 토모미의 고향집 정원 담장 아래에 피었던 정월 초하루에 봤던 그 동백나무에도 봄의 전령처럼 빠알간 겹동백이 어김없이 그때처럼 소담히 붉게 피어 있을게다. 눈을 지그시 감으니 그 붉은 동백 꽃잎들이 마냥 내 마음 속에서 빠알갛게 불타오르더니 창밖의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에 사뿐히 내려앉아 쌓여 있던 그 희미해져 가는 옛 추억을 조용히 녹여 내리고 있다. 한 잎씩 또 한 잎씩 눈꽃이 내려오듯 …. [수상소감] 인생을 나누는 아름다운 그날 30여 년 전 방황하던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었을 때 문득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일기를 쓰면 삶을 더 값있게 보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후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일기로 기록해 두는 습관이 생겼는데 용기를 내어서 이번 수필부문에 응모하게 되었는데 뜻하지도 않은 상을 받게 된 것을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발달장애가 있는 아들도 언젠가는 자신의 삶을 글로 남겨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나누는 아름다운 그날이 오기를 고대하면서 앞으로도 좋은 글로 독자분들과 만나기를 원합니다. [심사평] 구성에 대한 아쉬움 남아 '동백아가씨'는 20년 전 동경 유학 중에 알게 된 토모미라는 여인과의 동백꽃 같은 사랑 이야기다. 구성이 더 치밀하고 전체가 아우러지도록 문장을 꼼꼼히 챙겼더라면 훨씬 좋은 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민자들이 살아가는 곳에 이민 문학이 꽃핀다.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듯 디아스포라 문학이야말로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으로 통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이민 생활이 도드라진 글을 기대한다. 당선작을 내지 못해 아쉽다. 미주 수필의 현주소를 겸허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심사위원: 김영중 수필가, 정찬열 문학평론가>

2018-03-09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수필 부문] 심사평 "생에 대한 가볍지 않은 통찰"

응모작품들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초벌 읽기를 끝내고 나니 다섯 분의 작품이 기억에 남았다. 신성욱의 '아빠 수국이 파란 꽃이야' 조성환의 '배롱나무 그늘 밑에서' 김희원의 '아들의 눈물' 이윤홍의 '아버지의 훈장' 이한창의 '동백아가씨' 등이다. 수필은 개인의 체험과 그로부터 얻은 삶에 대한 성찰을 담아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를 세상에 전달하는 문학 형태다.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글이 소재와 주제 부분과 전체 단락과 단락 간 연결이 무리 없이 아우러져야 한다. 읽고 나서 독자가 내용에 공감하고 '감동'에 이르면 비로소 그 역할을 다하게 된다. 문학은 독자에 의해 완성되기 때문이다. 함께 심사를 맡은 김영중 수필가와 의논한 결과 조성환의 '배롱나무 그늘 밑에서'를 가작으로 정하는데 쉽게 합의했다 장려상은 이견이 있었지만 결국 이한창의 '동백아가씨'를 선하기로 했다. '배롱나무 그늘 밑에서'는 구순의 어머니가 넘어져 양로병원에 입원했던 이야기다. 병원의 여러 풍경을 눈에 보이듯 선명하게 그려냈다. "긴 병마는 천륜을 이간질하려 들지 모른다"는 표현에서 보듯 생에 대한 가볍지 않은 통찰이 들어있다. 어머니가 퇴원하던 날 휠체어에 앉아 현관에 늘어선 열대여섯 명 환자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는 모습은 독자의 가슴을 환히 밝혀준다. 감동적이다. 그러나 표현을 다듬고 삶의 비의에 한걸음 더 들어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출된 다른 작품도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선정하는데 참고가 되었음을 첨언한다. '동백아가씨'는 20년 전 동경 유학 중에 알게 된 토모미라는 여인과의 동백꽃 같은 사랑 이야기다. 구성이 더 치밀하고 전체가 아우러지도록 문장을 꼼꼼히 챙겼더라면 훨씬 좋은 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민자들이 살아가는 곳에 이민 문학이 꽃핀다.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듯 디아스포라 문학이야말로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으로 통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이민 생활이 도드라진 글을 기대한다. 당선작을 내지 못해 아쉽다. 미주 수필의 현주소를 겸허하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심사위원: 김영중 수필가 정찬열 문학평론가>

2018-03-02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수필 부문] 배롱나무 그늘 밑에서 - 조성환<가작>

전기에 감전된 듯 멈칫했다. 문을 여는 순간 표정없는 시선들이 내게 쏠려왔다. 병원 현관 맞은편 벽을 기대고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환자들이다. 주말 아침이라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당황스럽고 미안한 마음으로 급히 돌아가는 걸음에 눈길이 따라붙는다. 뒤통수가 저릿해서 뒤돌아보면 내가 가는 곳이 궁금했던 눈들이 여전히 내 뒤를 쫓고 있었다. 어머니가 뒷마당 잔디에 물을 주다가 넘어져 꼬리뼈를 다치셨다. 다행히 금이 간 상태여서 몇 개월만 치료를 받으면 완치될 수 있다고 한다. 필리핀계 간호사는 이 양로병원에 오는 환자는 거의 죽어서 나가는 곳인데 당신의 어머니는 운이 좋으신 거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어머니도 양로병원의 성격을 이미 알고 계셨든지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자식들이 누누이 사정 설명을 해도 긴가민가한 눈치였다. 딸과 아들 며느리들이 돌아가며 어머니 곁을 지켰다. 늦은 밤 잠든 어머니의 손을 잡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이렇게 작은지 몰랐다. 외투도 없이 엄동을 견디던 시절 집으로 들어서는 꽁꽁 언 손을 덥석 잡아서 당신의 가슴 속에 파묻던 손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내 두 손을 감싸 쥐고도 남을 만큼 커보였다. 엄마의 작고 마른 손이 큼지막한 아들의 손에 감싸인 채 색색 고른 숨소리를 내며 야윈 잠이 드셨다. 어렸을 적 내가 아플 때 우련한 눈으로 옆을 지키다가 이마에 얹어주던 따뜻한 손. 아기 같이 잠든 엄마의 이마에 손을 대 보았다. 밭이랑 같다. 구순의 세월만큼 길고 고랑이 깊다. 어머니 곁에서 밤을 지키다 보면 병실마다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병종에 따라 앓는 소리도 각각 달랐다. 고통을 못 이겨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들으면 나도 아파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도 아프고 저렇게도 아팠다.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잡부며 방문객이 찾아와 북적대기 시작하는 아침이 되자 나는 비로소 생기를 찾았다. 절규와 신음이 뒤섞여 돌아다니던 긴 터널의 밤을 빠져나와 병원 밖으로 나갔다. 맑은 아침 햇볕이 동그랗게 모여 있는 병원 밖 뒤뜰이 더없이 반가웠다. 배롱나무에 붉은 꽃망울이 새 희망처럼 막 터지고 있었다. 밖과는 달리 신음과 절규가 떠다니는 문지방 안쪽은 어두운 그림자만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른 아침 어머니와 같은 병실 환자에게 여든은 됨직한 남편이 도시락통 하나를 들고 힘없이 들어섰다. 이 노인도 아침 저녁으로 들락거렸다. 부인은 앓고 있는 병의 종류가 많아서 장기 요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늘 눈을 감고 있다가 무슨 까닭인지 남편만 보면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냈다. 병원에서 나오는 음식을 마다하고 남편이 만들어 오는 미음과 동치미 국물만 받아먹었다. 성을 내는 부인 앞에서 노인은 쩔쩔매면서도 그 성질을 다 받아냈다. 아내 옆에 앉아 손을 주무르거나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그의 아픈 아내는 그제야 잠이든 듯 편안해 보였다. 어둑한 휴게실 옆자리에 우연히 동석했을 때 위로의 말을 전하자 다 내가 감당해야 할 업보지요. 노인은 들릴 듯 말듯 한목소리를 내려놓고 일어섰다. 의욕을 잃은 눈빛과 표정 없는 얼굴로 휘청 걸어가는 뒷모습이 정작 부인보다 더 아파 보였다. 어머니가 계시는 맞은편 병실에선 스물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청년이 할머니인 듯한 노인을 자주 찾아 왔다. 노인은 청년의 손을 연신 쓰다듬고 청년은 어깨를 들먹이며 소리 죽여 울었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손자인 듯한 청년만 찾아와서 저리 섧게 우는지 그 모습을 흘깃흘깃 훔쳐보면 영문도 모르는 눈물이 따라나왔다. 장기 입원한 환자를 찾는 가족이나 문병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환자들은 신음 속에 소중한 사람을 되뇌었다. 보고 싶은 자식들의 이름일 터였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찾아오지 못하는 자식들도 어딘가에서 부모를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을지 모른다. 배롱나무 그늘 밑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만일 어머니가 장기 입원을 해야 한다면 나도 형제들도 그 수발을 얼마나 충실히 들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어머니도 휠체어에 기대어 문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긴 병마는 천륜을 이간질하려 들지 모른다. 문득 뭔가가 불안하고 두려워졌다. 부디 살 만큼 산 그때 병마들이 찾아오기 전에 저를 거두어 주소서 하고 기도하는 심정이 되었다. 어머니가 퇴원하는 일요일 아침. 현관문을 들어설 때 일렬로 앉아 있는 환자들이 늘 부담스러워 눈길을 피하던 곳. 오늘은 일일이 손을 잡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내게로 쏠리는 눈. 손을 맞잡아 주리라던 마음이 멈칫한다. 무겁고 냉랭한 눈빛을 본 후였다. 숫기없는 마음에 손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못 본 체하고 들어서려다가 엉겁결에 하이 하며 손을 흔들었다. 순간 열대여섯 되는 손이 일제히 올라가며 흔들어 준다. 그리움에 겨웠던 손짓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차례대로 손을 잡았다. 윤기 없는 손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뻣뻣하고 차가웠다. 마지막 남은 손을 잡았을 때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움켜잡고 놓지 않는다. 할머니는 눈가에 촉촉하게 이슬을 그려내며 그리웠던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자꾸 손등을 쓰다듬는다. 나는 한동안 그 손을 놓지 못한다. "단비같은 글길 터줘 감사"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이국의 하늘 밑에서 스치고 지나간 바람의 소리들. 애잔하거나 쓸쓸하거나 고독하거나. 사람 사는 곳이야 어딘들 다르랴마는 이방의 삶이 곤혹스러울 때 문득 모국어라는 끌어 않고 울어도 좋을 어머니가 있다는 걸 늦게서야 깨달았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써보고 지우고 써 보기를 거듭하는 동안 생각지도 못한 언어들이 툭툭 튀어나왔습니다. 모국어가 눈 뜨는 순간의 희열. 늦게 찾아 든 사랑 앞에 밤은 청년의 잠 못 이루던 열정을 돌려줍니다. 사랑의 힘은 고독하지만 행복합니다. 저릿한 고통의 쾌감 같은 그런 것.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꽃이 눈 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까닭을 바위가 때로는 울고 있는 모습을 생각하다 잠이 든 날은 내가 바람이 되고 들꽃이 되고 바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나의 이야기라는 것을 써야 할 터인데 얼마나 밤을 뜬눈으로 보내야 글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지. 심사위원도 눈치를 채셨는지 아직 설익은 작품을 일단 선에 넣어두고 두고 볼 참인 것 같습니다. '화살 하나가 공중을 가르고 과녁에 박혀/전신을 떨 듯이/나는 나의 언어가/바람 속을 뚫고 누군가의 가슴에 닿아/마구 떨리면서 깊어졌으면 좋겠다.' 이시형 시인의 '시'라는 시처럼 그런 작품이 나오도록 분발해서 뽑아 주신 것에 보답하겠습니다. 갈급한 심정에 단비 같은 글 길을 터주신 김화진.김동찬.성민희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사랑하는 딸 봄이와 저의 짝 권영순과 함께 이 기쁨을 같이하겠습니다.

2018-03-02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시·시조 부문] 심사평

미 전역에서 응모한 230편의 작품을 받아들었다. 불확실한 시대에 살아가는 이민자들이 모국어로 시를 쓰는 일이 결코 쉬운 일 이 아닌데 눈물겨운 기쁨이다. 예심을 거쳐 종심까지 손에 들은 작품은 '페니 하나' '조약돌의 노래' '귀향열차' '기러기가 왜 거기에 서 있을까요' '오래된 기억' '가시연꽃이 피기까지' '봄 느릅나무' '목련 꽃'이다 고심 끝에 최종심에 선정한 작품은 '조약돌의 노래' '귀향열차' '기러기는 왜 거기에 서 있을까요'다. 당선작으로 황의열의 '조약돌의 노래'를 선정했다. 기성의 틀에 갇혀 있지 않았고 때 묻지 않은 상상력으로 일상적인 것에서 일상적이지 않은 것을 찾아내었다. 자연의 속살을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여 진통하고 고민하며 모색하는 흔적들이 역력했다. 다른 6편 작품 속에서도 고른 시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시의 길을 탄탄히 하는데 무리가 없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가작에는 이원익의 '귀향열차'다. 비밀스러운 뜻을 찾아내는 듯한 치밀한 관찰과 묘사의 안정감으로 오랜 습작을 통한 시조의 가치인 정형에 대한 인식이 확실하다. 앞으로 시조단의 큰 정진을 기대한다. 장려에는 김소희의 '기러기는 왜 거기에 서 있을까요'이다. 시적 진실이 눈을 고정시켰다. 독자와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감동적인 시를 쓸 수 있는 재능이 있으니 시 창작에 열심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본다. 시의 심장은 은유와 서정이다. 개인적 자의식에 취하여 소통이 불가능한 난해한 작품이 양산되고 있는 현실에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많은 작품을 보내주신 응모자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한다. 종심까지 올라온 송진순, 진민재, 배형준, 이미화, 박옥순 다섯 분에게 아쉬움과 함께 격려를 드리며 지속적인 시 쓰시기에 매진하시기를 바란다. 입상하신 황의열, 이원익, 김소희, 세분 축하하며 시가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실 것을 믿는다. 문학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해마다 중앙신인문학상을 제정하고 신인들의 등용문을 열어 주시는 미주 중앙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심사위원 이승희·시인

2018-02-28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시·시조 부문] 기러기가 왜 거기에 서 있을까요 - 김소희<장려상>

겨울 들판 위에 흰 기러기들 모여 살아요 고개 숙여 하늘을 등지고 땅을 후벼 일구어내고 있어요 맨발로 절룩거리며 허공을 내려오던 마지막 순간에도 잠시라도 하늘을 등지지 않고는 작은 둥지를 틀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굽은 등 가린 하얀 옷이 작업복이 되고 부랑의 눈바람이 길 막고 서 있어도 이빨 없이 바짝 붙어서 노긋노긋 살아가는 건 날개의 무게 때문은 아닐 거예요 남의 땅을 딛고 산다는 것은 내가 모르던 내 모습으로 삭이며 살아내는 일 저녁이면 해마저도 석양으로 변심하고 텃새 무리가 빤히 지켜보는 이국의 하늘 반쯤 여며진 눈으로 웅크려 도도히 하늘에 맞닿는 꿈을 꾸어요 시리어서 파닥이는 무른 날개 밑에 차오르는 뭉클한 온기 언 땅에 쓸릴수록 질겨져 부풀어 오르는 독한 몸부림 봄이 오기 전 끈질기게 끈질기게 하늘을 안으로 들여놓아요 수상소감 미국에 와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면서 행복했던 시간도 많았습니다. 그와 비례해서 분명 위축되고 고독했던 시간마다 나에게 시는 기쁜 것 슬픈 것 아름다운 것 추한 것, 그때그때 느끼는 미려한 감정들을 포기하지 않고 살겠다는 삶에 대한 애착이고 몸부림이었으며 더 이상 빛을 감춘 그림자로 살 수 없다는 저항이었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선정해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 드리며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을 믿고 지지해주시는 부모님 그리고 너무나도 사랑하는 내 가족들, 따뜻하고 엄격하신 목요반 문우들께 감사 드립니다. 끝으로 인연의 질긴 끈으로 시와 현실의 삶 속에서 올곧게 이끌어주시는 양균원 교수께 미약하나마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2018-02-28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시·시조 부문] 귀향열차 - 이원익<가작>

첫 서울길 완행열차 하루가 저무는데 새 세상 내다보며 구겨 앉은 창너머로 깔리는 땅거미 속에 떠오르던 작은 불씨 멀리서 갓 피어나 이윽고 다가오다 재빨리 스쳐가 다시 피어 다가오던 하나 둘 그 밤의 불빛 사그라져 간 나날들 이제사 되돌아와 저 들판 가로질러 그 날 밤 가던 그 길 되짚어 달리는데 꽤액 꽥 기적도 없이 미끄러지는 한 세월 드리운 모니터는 혼자서 전을 펴고 서늘한 밤 고즈넉한 우주선의 비행처럼 혹성을 찾는 길목엔 가로등도 없다던가 손전등 건전지에 남아 있는 전류처럼 그 밤의 여린 불빛 찾아 창밖에 켜려는데 바깥은 눈부신 어둠 내내 틈을 놓친다 수상소감 우리 같은 이민자는 해외에 살면서도 금방 지워지지 않는 별난 생각이나 저절로 솟아나는 흥겨움과 애틋함 같은 것은 우리말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지요. 안 그러면 마치 신발 겉으로 발등을 긁는 것처럼 시원하지가 않거든요. 지난번에 고국을 찾았다가 문득 산문이 아닌 어떤 운문스러운 감흥이 절로 일었습니다. 그것이 지워지지 않아 결국 글로 옮기자니 자연스레 시조 형식에 실리더군요. 마침 중앙일보에서 공모가 있어 보내 봤는데 뜻밖에도 눈에 잡혀 후하게 낙점을 해 주시니 뿌듯하고도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더 생생한 글발로 읽는 분들을 대할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201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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